영화 ‘인터뷰’는 영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영화란 우리가 통상 좋은 영화라고 말하는 ‘첫 장면이 중요한’ ‘딴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것들을 말한다. 영화는 극중 ‘인터뷰’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제작진의 입을 빌어 이 말을 반복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거부는 곧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한 반문이고, 진실이라고 믿는 것과 거짓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형식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기도 하다.형식으로 본질을 규정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 은석(이정재)의 인터뷰 대상이 된 영희(심은하)의 두 모습과 일반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증명된다. 처음 인터뷰에서 발레리나인 영희는 자신을 미용보조사라고 속인다. 그러나 그 장면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다큐멘터리 형식인 비디오 카메라에 담기고, 오히려 그의 본래 모습은 영화의 카메라가 필름으로 담는다.
영화가 드라마틱하고 다큐멘터리는 건조하다는 생각은 의도적으로 감정을 배제시킨, 상투적인 과거를 가진 배우들이 연기하는 주인공들과, 반대로 영화적일 만큼 웃음과 감동이 살아있는 일반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무너진다.
그것으로 진실과 거짓이 전도되거나,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거짓 같은 진실, 진실 같은 거짓의 존재. 정말 영화 속 또다른 프랑스 영화 촬영장에서 배우가 말한 대사를 영희가 죽은 애인의 무덤 앞에서 똑같이 말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영희의 거짓은 조금씩 진실을 섞고 마침내 셀프카메라를 통해 진실로 바뀐다. 그렇지만 은석은 앞부분에 인터뷰한 영희의 모습을 거짓이라고 쉽게 버리지 못한다. 거기에는 미용보조사로서의 영희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영화에 대한 기존 관념을 깨는 방식으로 몇가지 형식을 도입했다. 다규멘터리와 픽션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여러 상황을 짧게 끊어가되 다시 보기와 조금씩 늘려가기를 철저히 반복한다. 연출도 정교하다. 그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감성보다는 끝까지 이성으로 영화를 받아들이고 주제에 접근하도록 괴롭히지만, 분명 독창적이고 놀랄만한 새로운 도전임에는 분명하다. 오락성★★★☆ 예술성★★★★
이대현기자
■'인터뷰'의 변혁 감독
변혁(34) 감독은 영화 ‘인텨뷰’를 위해 57일간 250명과 릴레이식 인터뷰를 했다. 그의 질문은 “사랑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되돌아 오는 질문은 “도대체 무슨 영화를 만들려고?”였다.
변혁 감독은 인터뷰를 좋아한다. 영화적 장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훔쳐보기와 비슷한 훔쳐듣기. 그래서 그가 하고 싶은 영화 이야기는 ‘인터뷰’가 됐다. 그것이 진실에 도달하는 방법이라는 것엔 회의적. 그러나 진실을 찾아가는 데는 여전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과정은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믿고 있다.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이 아닌 것이 되지만, 그래도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마치 ‘인터뷰’의 영희(심은하)처럼. “발레리나로서 영희는 진실이고, 미용보조사로서 꾸며낸 이야기는 거짓이기 때문에 페기처분해야 하나? 아니다. 그 속에는 그 어떤 진실보다 진실한 것이 있다.”
가능하면 그는 인터뷰 현장만 갖고 영화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영화는 이래야 돼”하는 것들을 모두 해체하고 싶었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이고, 픽션은 거짓이며, 멜로드라마는 감동적이어야 하고, 영화는 드라마틱해야 하고, 그림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등의 고정관념들. 다른 예술에서는 오래 전에 해체되고, 버려지고,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왜 영화는 종합예술이면서 영상에만 집착하고, 실험을 겁내는가?
변혁 감독은 그것이 “영화의 영역을 제한하는 벽”이자 “산업으로서 영화의 두려움이자 태생적 한계”라고 말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 역시 처음부터 욕심껏 발을 내딛지 않았다.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이 정도가 선(線)이라는 지점에서 ‘절충’했다. 그 절충만으로도 ‘인터뷰’는 분명 새롭고, 그는 한국 영화계에 소중하고, 지적이며, 치밀한 감독이 됐다. 그는 새로운 형식(반복하기, 끊어가기, 비디오카메라와 필름으로 찍은 모습의 대조법 등)을 정교하게 배치했고, 감정의 타협보다는 끝없는 형식과 상황의 반복으로 ‘진실이 무엇인가’란 주제를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를 위해 스타 이정재 심은하조차 철저하게 건조시켰다.
“내가 영화적 진실이라고 믿었던 러시아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우상에서 깨어나듯 관객도 ‘인터뷰’란 징검다리를 건너 새로운 영화의 세계에서 새로운 감흥을 얻었으면 좋겠다.”
Who?
34세의 변혁 감독은 아직도 영화학도. 한국 영화아카데미, 파리 8대학 영화학과 석사과정, 프랑스 국립영화학교를 거쳐 파리 1대학에서 미학 박사 과정을 밟고있다. 3년째 끌고 있는 논문(시점에 관한 연구)을 끝내려 4월 중순 다시 프랑스로 간다. 1991년 단편 ‘호모 비디오쿠스’로 몬테카니니영화제 심사위원대상, 1995년 ‘브루노 위당 34세’로 방돔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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