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들여다보고 있다.’컴퓨터시대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돼온 ‘감시(監視)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직원들의 컴퓨터 사용 감시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업이 급증하면서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
외국계 기업인 S사는 지난해부터 ‘업무외 컴퓨터 사용금지령’을 내리고 24시간 PC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직원 개인의 인터넷 및 E-메일 사용내역을 일일히 체크, 업무용도외 사용시 직·간접적으로 주의조치를 내린다.
이 회사 직원 H(25·여)씨는 “E-메일을 체크하거나 잠깐 PC통신에라도 들어가면 부서장이 당장 주의를 주므로 마음놓고 일할 수가 없다”며 “근무시간 내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것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이달초 컴퓨터통제시스템을 도입한 H금융회사는 증권·채팅사이트 접속 및 PC통신 사용을 전면금지하고 인터넷 메일도 통제키로 했다. 개인의 컴퓨터 사용내역이 경영진과 간부들에게 정기리포트 형식으로 올라간다는 소문이 돌면서 직원들 사이에 ‘인터넷 기피증’까지 생겨났다.
역시 사이버 감시시스템이 작동되는 대기업 D사 직원 박모(28)씨는 “컴퓨터앞에 앉을 때마다 누군가 나를 미행하는 것 같아 죄인이 된 기분”이라며 “회사가 개인의 사생활까지 감시할 권한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밖에 “업무와 정보수집 차원에서 인터넷을 검색하면서도 괜한 오해를 살까봐 겁이 난다”(S은행 박모·28) “PC추적을 피하기 위해 전화에 매달리는 직원들이 많다”(S정보통신 이모·32) “감시가 싫어 회사명의의 E-메일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S전자 조모·27)는 등 불만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현재 기업에서 널리 쓰이는 ‘메일통제 프로그램’과 인터넷 관리시스템인 ‘웹키퍼’ 등은 메일의 발신·수신자와 세부내용은 물론, 첨부파일까지 모두 열람할 수 있고 접속사이트의 이름과 접속시간, 화면내용까지 완벽하게 재생해 낸다. 금융사 김모(32)대리는 “직장인들에겐 이들 프로그램이 ‘공포의 사이버 KGB’로 불릴 정도”라고 심한 불만을 드러냈다.
대표적 컴퓨터 감시시스템 개발업체인 S사 관계자는 “이미 150여개 기업에 컴퓨터 감시시스템을 구축해 줬으며, 현재 시험가동 중인 업체까지 합하면 400여개가 넘는다”며 “정보통신업체와 대기업을 중심으로 갈수록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이버감시체제가 사생활 침해 수준을 넘어, 직원에 대한 지배·통제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센터 정현철 선임연구원은 “기업보안과 근무감독 차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직원의 사전동의 없이 전면적으로 감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근원(梁根源)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도 “기업내 사이버 프라이버시에 대한 법적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규제 및 보호가 힘든 상태”라며 “인터넷 감시는 사이버시대 중요한 인권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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