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한 마리가 창공을 가른다. 그리고 신라군과 벌이는 궁예의 군사들의 처절한 철원성 전투가 전개된다. 한국 드라마사에 한 획을 그을 KBS 대하사극 ‘태조 왕건’의 시작 장면이다.4월 1일(토)부터 150회 예정으로 방송할 ‘태조 왕건’ (이환경 극본, 김종선 연출)은 통일신라시대에서 후삼국으로 분열된 뒤, 태조왕건의 통일로 나가는 장대한 여정을 그린 드라마다. 사극에선 거의 볼 수 없었던 고려 건국 과정을 조명한 것으로 왕건 궁예 견훤 등 세 영웅을 중심축으로 전개된다.
김종선 PD는 29일 시사회장에서 “단순히 과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고려 건국을 중심으로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화합과 통합이라는 21세기의 시대 정신을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태조 왕건’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00부까지는 불국정토를 외치며 철원을 중심으로 봉기한 궁예가 지지 기반을 확대하고 왕건이 궁예 휘하로 들어간 뒤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과, 왕건에게 패해 도망가다 백성에게 맞아 죽는 궁예의 비극적인 몰락이 그려진다. 후반부는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일어나 스스로 후백제의 왕이 된 견훤이 병산전투에서 왕건에게 패한 뒤 쇠퇴의 길을 걷다 아들인 신검 형제에게 축출돼 왕건에게 투항하는 과정과 후삼국 통일을 담아낸다.
‘태조 왕건’은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기획 기간 18개월, 제작비 250억원이라는 방송 사상 가장 큰 규모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문경새재 세트를 비롯한 4곳의 야외 세트와 의상비만 35억원이 들었다. 고려궁 등 야외세트와 대례복(大禮服)을 비롯한 2,000여 종의 의상은 철저한 고증과 문헌을 기초로 제작됐다. 주연급만 60여명. 15부 촬영까지 1만여 명의 보조연기자가 투입됐으며 100여 필의 말이 동원될 정도로 스펙터클한 드라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태조왕건'의 세주인공
●왕건 역의 최수종
‘태조 왕건’ 은 최수종(38)에게 분명 부담이었다. 방송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기 인생에도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방송이 임박하면서 욕심을 버렸다. 연출자와 작가가 원하는 캐릭터에 충실히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시사회장에서 만난 최수종은 왕건이라는 인물을 체화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동안 맡았던 오락 프로그램 진행자 자리도 내놓고 다른 드라마 출연도 고사하며 왕건의 캐릭터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대본이 나오는대로 사극 연기와 대사에 일가견이 있는 선배 탤런트 김흥기를 찾아가 대사의 장단, 호흡법 등을 배우고 있다. 말타기와 무술연마에 도 많은 시간을 보낸다.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주변의 말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용의 눈물’ 에서의 강인한 유동근의 연기와도 비교가 될 것이다. “왕마다 다른 카리스마가 있다. 포용성이 있고 관대한 왕건을 최수종 식으로 표출하고 싶다”는 말로 이같은 우려에 답한다. 드라마가 끝난 뒤 “우려가 이같은 좋을 결과를 낳았다”는 올해 아카데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 힐러리 스웽크의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궁예 역의 김영철
뚜껑을 연 ‘태조 왕건’ 첫 회 분, 철원성을 공격하는 궁예의 모습은 강렬했다. 불꽃 같은 카리스마로 민심을 사로잡는 혁명군 지도자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웅장한 스케일의 남성적 드라마를 표방하는 ‘태조 왕건’과 가장 부합하는 등장인물은 단연 궁예다. 철원·송악 일대를 장악한 그는 미륵사상으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혁명군 지도자로 등장하지만, 카리스마의 과잉으로 스스로 미쳐 무너지고 마는 ‘비극적 영웅’이다. 150회 예정 중 그가 죽는 100회까지 궁예의 독무대가 될 것이다.
이환경 작가가 일찍부터 궁예로 점 찍어둔 배우가 바로 김영철(47)이었다.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궁예답다”는 것이다. 근 1년 반 만에 TV에 모습에 드러낸 김영철도 그동안 다른 프로그램 출연을 사양하며 일찍부터 이 배역을 준비해왔다. 연기 생활 24년 만에 처음으로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렸다. 지난해 말부터 한 달여간 찍은 철원성 전투 장면은 연기생활 중 최고로 힘들었다고 한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때문에 동원된 800여명의 엑스트라 중 200여명이 돌아가버리기도 했다. 입이 얼어 대사도 안 나오는 상황에서 뜨거운 물로 입을 녹이며 혼신을 다했다. “영웅의 새로운 전형을 선보이겠다”는 일념으로.
●견훤 역의 서인석
‘동의보감’ ‘한명회’ ‘서궁’ 등 유명 사극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서인석(51). 사극 전문배우로 불릴 만큼 사극 연기가 완숙한 서인석도 긴장을 하고 있다. 문경새재 야외 세트장에서 만난 서인석은 캐릭터 분석에 여념이 없다. 저돌적이면서 독선형으로 다혈질이나 너그럽고 인정이 많은 견훤의 다면적 성격을 소화해야 한다.
그는 1973년부터 수십 편의 연극무대에 섰다. 그래서 표정연기 뿐만 아니라 대사 연기도 탄탄하다. “사극은 연극적 연기가 필요하다. 연극과 사극에서 체득한 연기력을 견훤이라는 캐릭터에 쏟아 붓겠다”고 각오를 말한다. 그가 사극에서 드러내는 연기의 선은 굵고 명료하면서도 과장되어 보이지 않는다.
“견훤은 연기자로서 욕심나는 인물이다. 난세에 왕으로 그리고, 아들들에게 배신당하는 아버지로서 비극적인 견훤의 삶은 내 연기 인생에 큰 계기가 될 것이다.” 그는 드라마의 캐릭터 조화론도 펼친다. “스케일이 큰 대하사극일수록 주요 인물들의 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왕건 궁예 견훤이 조화를 이루며 연기를 펼쳐야 ‘태조 왕건’이 성공할 수 있다.”앞으로 1년 6개월 동안 견훤 역으로 살아가겠다고 한다.
송용창기자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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