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삼백여 년 전 신라의 원효 스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업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화쟁회통(和諍會通)의 구현이었음을 다시 기억한다. 스님께서는 종파불교의 폐단으로 자신의 종파와 종지만을 수승한 것으로 주장하고 다른 종파의 종지는 모두 배척하는 아시피비(我是彼非)의 쟁론들을 하나하나 물어서 진리의 바다로 합류시켜 한국적 회통불교를 이룩하셨다.불교에 국한된 이러한 사정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보면 스님 44세 때 태종무열왕은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또한 스님 55세에 문무왕은 고구려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을 이룩하였다. 원효 스님께서 화쟁회통을 목이 터져라 외치며 각성시키고자 애쓰신 것은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을 차별하지 말고 국토의 통일뿐 아니라 진정한 민족의 총화를 이룩하기 위함이었다. 단일민족의 단결된 힘으로 강대한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고 또한 기나긴 전쟁으로 피폐해진 신라인들을 어루만지고, 나라잃은 설움과 감정적 대립으로 인한 이방인 신세에 허덕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을 감싸안아서 민족총화의 강대한 통일국가를 이루어 민족문화 건설의 초석이 되고자 함이었다.
스님의 한결같은 신념은 내 고향, 네 고향이나 내 땅, 네 땅이 따로 있을 수 없고 오직 한 겨레 같은 동포로서 총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통일 이후에 발생한 여러 가지 부작용과 지역적 대립과 피정복민들과의 감정문제 등을 화쟁총화의 정신으로 합일시키고자 진력하셨으며, 그러한 스님의 노력이 주춧돌이 되어 통일신라 시대에는 배달민족의 정신문화를 찬란히 꽃피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21세기, 동서의 화합과 남북의 통일을 이루어내리라는 온 국민의 한결같은 다짐이 무색하게 새천년 첫 총선에 임하는 각당의 지도급 인사들과 후보자들은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촉발시키고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은 뒤로 미루더라도, 천삼백여 년 전 그때처럼 민족의 총화가 절실한 이즈음 이 땅에 원효 스님 정신의 환도중생(還道衆生)은 바로 유권자 대중들의 소임(所任)이다.
/경성스님 해인사 포교국장
입력시간 2000/03/30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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