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백혈병 소년이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간 극심한 대립으로 분단된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에 화해의 기운을 움트게 하고 있다.27일 남과 북 키프로스를 가르는 ‘그린라인’의 유엔 건물앞으로 북 키프로스의 터키계 주민 500여명이 몰려 들었다.
평소 같으면 긴장한 양측 초계병들의 기관총구가 번득였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이들은 백혈병에 걸려 숨져가는 남측의 그리스계 소년 안드레아스 바실리우(6)군에게 골수를 기증하기 위해 혈액검사를 받으러 온 터키계 주민들이었다.
기증자중에는 북 키프로스 집권 민주당의 세르다르 덴크타슈, 야당인 공화터키당의 메헴트 알리 탈라트같은 정치지도자들도 포함돼 있었다.
키프로스 주둔 유엔평화유지군의 찰스 골킨 대변인은 “매우 고무적인 일로 양측 주민간의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키프로스는 1960년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그리스계와 터키계간에 내전을 치렀고, 1974년 터키군의 지원을 받은 터키계가 북부를 장악, 독립을 선포해 분단됐다.
남키프로스 정부 대변인은 이날 “소년을 돕기 위해 터키계 주민들이 보여준 온정은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 모두 한 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환영했다.
터키계 주민들의 온정에 감명을 받은 남키프로스 정부는 백혈병에 걸리는 터키계 주민이 생기면 남쪽의 골수기증자 명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남키프로스의 그리스계 주민들은 10여일동안 5만여명이 이미 골수기증을 약속했다.
키프로스를 둘러싸고 앙숙인 그리스와 터키도 소년을 돕기 위해 외무장관간에 별도의 회담을 갖았다. 지난 상호 지진 구호이후 화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터키측은 자국의 골수기증자 명단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소년에게 적합한 골수 기증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적합한 골수 기증자를 찾을 확률은 3만명중 1명이다.
키프로스 주민들은 이 소년으로 인해 조성된 화해 분위기가 오는 5월23일 미국 뉴욕에서 재개될 양측 지도자간 회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하고 있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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