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 어떻게 만드나스타는 만들어진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그 시스템이 더 정교해질 뿐이다. 당연히 스타를 제조하는 기획사나 매니저들도 바뀌고 있다. 그러나 형태와 시스템이 바뀔 뿐 그들의 관행이나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연예계 풍토에서 아직 별로 변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자판기’(돈에 약한 문화 권력자), ‘본드’(한번 붙으면 떨어지지 않는 매니저), ‘기관총 쏘다’(마케팅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다)…. 매니저가 가는 곳엔 항상 이런 은어들이 아직도 속삭여진다.
댄스그룹 ‘S’팀의 기획자이자 매니저인 L씨를 통해 스타를 어떻게 ‘만들고 띄우는지’ 살펴보자. 그는 그룹의 음반이 나오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KBS MBC SBS 등 3개 공중파 및 라디오 방송, 케이블 TV 등을 돌아다니며 PD들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하루에 이렇게 만나는 사람이 대략 200여 명. 휴대전화 요금은 20만~30만원이 보통이고, 설이나 연휴엔 아예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자신의 홍보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의 경조사는 물론이고 연예인과 함께 ‘술시중’을 들 때도 있다. “사람 할 짓이 아닌 것 같다. 이 정도 힘들게 살 거라면 막노동 판에선 못살아 가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미 1996년에도 그룹을 키웠다가 2억원의 손해를 보았다. 아내가 마지막이라며 이곳저곳에서 융통해 이번 그룹을 키우는 일에 돈을 대주었다. 이 팀은 1997년에 나왔다가 ‘노래는 되는데 얼굴이 너무 안된다’ 해서 기획사에서 ‘버리는 카드’로 생각했었다. “내가 한 번 키워 보겠다”며 길거리에서, 후배 작곡가 소개로 ‘얼굴이 되는 애들’을 뽑아 추가했다. 그래서 음반이 20만장 가량 팔렸다. 그래도 투자비가 많이 들어 손에 쥔 돈을 없다. “이번 앨범을 계기로 PD나 기자들과 친분이 많이 쌓여 잘만하면 다음 음반에서는 돈 좀 만져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PD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만으로도 매니저 일은 반은 성공한 것이다.
■ 연예산업의 빛과 그늘
K씨는 우리나라 매니지먼트계의 ‘평균’이자 ‘별종’이기도 하다. 그는 ‘감’으로 가수를 뽑았고, 다음 앨범도 ‘감’으로 준비중이다. 여전히 가수는 노래보다는 기획력과 마케팅으로 ‘뜬다’고 생각한다.
반면 돈문제에 관해선 생각이 좀 다르다. 가수들에게 수익을 공개하고 돈을 공평하게 나눈다. “요즘 웬만한 연예인치고 스톡옵션 제안을 받지 않은 이들이 없다. 이제는 가수들도 자신의 상품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국내 최고의 댄스그룹인 모그룹의 경우 CD 한 장을 팔고 100원의 로열티를 가져간다. 스타들은 그러나 매니저와 한두번씩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김건모 신승훈 등 굵직굵직한 가수들이 로드 매니저 외에 따로 매니저를 두지 않는 것은 이미 한두차례 돈문제를 두고 매니저에게 크게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주먹구구식 조직 운영과 인맥에 매인 마케팅, 그리고 일부의 ‘성(性)과 돈 상납’ 시비, 가수나 탤런트와의 불공정한 계약 등 아직도 불온한 전력 시비에 시달리는 게 매니저들이다. 물론 역(逆)상황도 발생한다. 일단 뜨고 나면 소속 연예인에게 유리한 방송 포맷까지 요구하는 게 매니저이다. 스타가 출연 약속을 어기면 영화 기획 자체가 무산되고, 방송사들은 인기가수의 첫무대, 고별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사를 접촉한다. 스타의 인기도는 매니저와 방송사 PD의 시소게임에 존재하는 힘의 균형점이다.
■ 매니지먼트사의 지각변동
매니저는 이제 신세대 인기직종이 돼가고 있다. 조성모 신화를 일군 김광수씨, 가수에서 H.O.T와 S.E.S의 기획자로 변신해 성공한 SM기획의 이수만씨, 처음엔 ‘카피 기획’으로 비판받았지만 결국 또 다른 성공신화를 만든 DMS의 이호연 사장, 최근 막강 파워를 구가하고 있는 예당기획 변대윤 사장 등. SM기획은 이미 코스닥 예비심사를 통과했고, 다른 몇몇 기획사들도 코스닥 상장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탤런트들이 소속된 백기획의 백남수 사장은 2세대 매니저로 기업형 조직을 이끈다.
이제 1, 2세대 매니저들에 의해 다져진 연예 비즈니스의 큰 틀은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우선 가내 수공업, 중소기업형 구조는 기업형 매니지먼트사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얼마전 출범한 ‘싸이더스’. 우노필름 차승재 대표, SM기획에서 H.O.T 등을 발굴한 정해익, 박신양 정우성의 매니저인 정훈탁, 남희석 이휘재의 매니저인 박진씨 등이 모인 기업형 매니지먼트사다.
“기업형 구조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홍콩 일본 등의 매니지먼트사가 국내에 진출할 경우 국내 중소기업형 매니지먼트사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 등 미디어 환경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좀 더 기업형 구조가 필요했다.”
획일화한 연예문화, 방송사가 유일한 성공의 통로가 되는 상황에서 ‘관행’이 바뀔 가능성은 아직은 적어 보인다. 그러나 스타를 가진 매니저들은 이제 고부가가치의 새로운 산업 형태를 꿈꾸고 있다. 스톡옵션을 받는 연예인은 물론 연예인 스스로가 웹진이나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상품이자 기획자가 되기도 하지만 매니저라는 시스템은 더 큰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의 영향력은 연예 비즈니스의 파이가 커질수록 그에 비례할 것이다. 그들은 더이상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하지 않으려 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스타의 모든 길은 프로덕션으로 통한다’ 일본에서는 가수·연기자·배우 지망생들이 스타로 부상하기 위해선 반드시 프로덕션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프로덕션과는 사뭇 다르다. 일본 방송사들은 우리와 달리 탤런트나 가수를 자체 선발하지 않기 때문에 프로덕션이 이 기능을 담당한다. 프로덕션사는 스타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오디션을 실시하고 오키나와 액터스스쿨 등 유명 연기학교와 연계해 신인을 등용한다.
국내 매니저들은 드라마에 자사 소속 연예인을 출연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지만, 일본은 반대다. 방송사 프로듀서들이 유명 연예인을 자사 방송에 출연시키기 위해 프로덕션 사장에게 고개를 숙일 정도다. 유명 프로덕션이 특정 방송에 자사 소속 연예인의 출연을 거부하면 그 프로그램은 막을 내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일본 프로덕션의 연예인 관리 또한 철저하다. 스타들의 수입 중 대부분은 프로덕션사의 몫이고 스타들은 월급을 받는다. 3억엔(약 30억원)의 CF 모델료를 받는 대스타 월급은 40만~50만엔(400만~500만원)에 불과하다. 물론 보너스 형태로 각종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스타 월급은 프로덕션협회가 정한 금액을 벗어나지 못한다. 스타가 엄청난 몫을 챙기는 우리와 다르다.
프로덕션사는 이같은 수입으로 뜨지 못한 연기자나 가수들에게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월급을 제공한다. 그래서 자사 소속 연예인들이 대스타로 발돋음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이다.
200-300개에 달하는 일본 프로덕션의 양대 산맥은 자니스사와 라이징사다. 이들 프로덕션은 캐스팅에서부터 연기·가창력 훈련, 캐릭터 선정, 그리고 마케팅까지 모두 담당한다. 두 프로덕션사가 실시하는 전국 오디션에는 10만여 명의 예비 스타들이 몰릴 정도로 대성황이다. 이렇게 발굴된 사람들은 일정기간 훈련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하고, 철저한 전략 속에 스타로 만들어진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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