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 '만해·이중섭·이상役' 호연말이 많지 않다. 한 번 말문이 트이니, 그는 자신을 솔직하게 털어 놓을 줄 안다. 그에게 다가가는 데에는 낯익힘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즐겁다. 연극배우 김갑수(43). 연극배우라니, 갸우뚱거릴 사람이 한둘 아니리라. 1995년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의 이미지가 너무 크다.
‘태백산맥’에서의 야비하고도 능청스런 우익청년단장 염상구 연기가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에서 대종상 남우주연상까지 안겨줬으니, 무리는 아니다. 또 ‘금홍아 금홍아’에서의 이상, ‘지독한 사랑’에서의 대학교수로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1990년까지, 그는 서울연극제 등 주요 연극상에서 남자 연기상을 석권해 온 무대의 스타다. ‘님의 침묵’에서의 만해, ‘길떠나는 가족’에서 이중섭, ‘아! 이상’에서는 이상 등 고뇌하는 인텔리로서.
연극은 그에게 뭣보다 밥이었다. 1977년 현대극장 연구생 1기.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극단 연습장에서 눈 붙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당시 그에게 큰 매력이었다.
아주 일찍 정글의 법칙을 터득해 버린 소년에게 삶은 곧 싸움이었다. 그는 학교를 제대로 다녀 본 기억이 없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 중·고교는 휴학해 몇 개월 돈 벌고 몇 개월 학교 다니던 식이었다.
가난의 기억에 단련된 그는 연극을 관통해, 삶이라는 것에 안착했다. 그의 생존. 그래서 지금, 누구 못잖게 바쁘다.
지난해부터는 극단 신시의 공동 대표. ‘라이프’ ‘렌트’ ‘시카고’ 등 이 예정된 이 극단 뮤지컬 작업의 예술감독이기도 하다. 4월 1일부터 방영 예정인 KBS1 TV ‘왕건’의 녹화 작업에 참여 중인 그에게는 지금 컬트 코미디 영화 교섭도 하나 들어 와 있다.
그보다 우선, 4월 12~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올려지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연극 배우 김갑수’의 진면목을 확인할 기회다.
1978년 단역 식당 보이로 나왔던 그가 강산이 두 번 변한 이제, 큰 아들로 나왔으니 스스로 뿌듯하다. 인연이란 참 묘하다. 1978년 아버지 윌리 로먼으로 연기했던 이순재씨가 이번에도 역시 아버지로 나오니.
1986년 결혼, 딸(11) 하나를 두고 있는 그에게 부인이 가끔 농담 삼아 넌지시 건네는 말이 있다. “이름 좀 알려졌다고, 건방 떨지마라”며. 그러나 기우. 그래서는 안 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 아닌가.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만은 배반하고 싶지 않다.
/장병욱기자
입력시간 2000/03/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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