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의 미술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회가 국내 최초로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다. 29일 광주비엔날레 개막에 맞추어 ‘재일의 인권전’이란 제목으로 열리는 전시회에는 재일미술활동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재일 1세대 작가 송영옥과 조양규를 비롯해 전화황, 김창덕, 이철주, 곽인식, 채준, 김석출, 이우환, 최광자, 홍성익, 문승준, 곽덕준 등 재일동포 작가 23명의 작품 108점이 전시된다.그동안 재일동포의 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근대미술전을 개최하면서 국내 작가들의 작품에 포함돼 1-2점 소개된 적이 있을 뿐, 이같은 본격적인 전시회는 국내 처음이다. 남북 분단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국내 전시 자체가 금기시돼왔던 것이다.
김선희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원은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1945년 이후의 재일 한국인 미술에 대한 첫 본격적 조명 작업”이라면서 “그동안 재일미술은 조총련 미술, 곧 공산주의 미술로 규정돼왔던 것에 대한 오해를 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일동포 작가들은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 역사를 토대로 식민지, 전쟁, 정치·사회적 고통이나 모순을 드러낸 작품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김대중 납치사건 등 한국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다룬 작품도 여러 점 포함돼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재일동포 작가들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광주시립미술관 측은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 미야가현 미술관, 세타가야 미술관 등에서 재일동포의 작품을 대여해 왔으며, 재일동포 사업가 하정웅씨가 동포 작가들로부터 기증받은 작품도 여러 점 포함됐다. 1993년, 1999년 두차례 광주시립미술관에 690점의 작품을 기증해 미술계에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하씨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또다시 여러 점의 작품을 일본에서 특별 구입해 기증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회에서는 재일 미술의 상징적 존재인 조양규와 송영옥 두 작가에 대한 집중조명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한국미술사에 큰 의미를 준다. 재일동포 작가들은 수적으로 월등했던 리얼리즘 계열과 미술적으로 큰 성과를 올렸던 모더니즘 계열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재일동포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작품으로 승화했던 작가 송영옥(1917-1999), 전체 일본화단에서 전위미술의 선구자적 위치에서 활약했던 북송 작가 조양규(1928-?), 오사카에 본부를 두고 있는 ‘고려미술전’의 대표 김석출(1949-) 등이 리얼리즘 계열의 대표적 작가라면, 이우환, 곽인식, 곽덕준, 문승준, 최광자 등은 사회주의 이념과는 거리가 먼 모더니즘 계열의 작가들이다. 6월 9일까지 전시.
■Who
조양규
1928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 1947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 제자에게 북한 인민기를 게양하도록 지시한 사건이 발각돼 일본으로 밀항한다. 이후 10년 동안 일본에서 활약하며 ‘창고번’ ‘밀폐된 창고’ ‘맨홀 C’ ‘가면을 벗어라’ 등 대표작을 남겼다. 1961년 월북 이후 생사 여부는 미확인 상태. 1985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전위의 일본’전이 열렸을 때 재일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그의 작품 ‘맨홀’ 연작이 선정됐을 정도로 전후 일본 미술의 대표적 작가로 자리잡았다.
송영옥
1917년 제주도 출생, 1957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어부’ ‘새끼줄’ ‘문’ ‘귀국선’ ‘슬픈 자화상’ 등이 대표작. 자유미술협회를 기반으로 활동했다. 자신의 정체성이 재일동포와 남북한 3개로 분열되는 ‘삼면경’을 비롯해 히로시마 원폭사건, 광주 민주화운동 등 다양한 사회·역사적 주제를 다루었고 말년에는 강렬한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재일동포로서의 상념을 ‘개’에 비유하기도 했다. 작년에 사망했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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