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함 현대의 차기 선장으로 정몽헌(MH) 현대회장이 사실상 확정됐지만 ‘왕회장’(정주영 명예회장)의 마음이 왔다갔다했던 것인지, 초지일관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미스터리의 핵심은 정몽구(MK)회장을 경영자협의회회장으로 유임시킨다는 ‘왕회장 서명’의 진위 여부.26일 공개된 인사명령문 사본에는 왕회장이 ‘鄭(정)’자를 쓰고 원을 그린 형태로 돼 있다. MK측은 “어떻게 아버지의 서명을 조작할 수 있느냐”며 이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26일까지만 해도 서명이 가짜라고 주장했던 MH측 태도도 모호하다. 27일 오전 MH의 경영권 승계 사실을 공식발표한 김재수(金在洙) 구조조정위원장은 서명의 진위를 묻는 질문에 즉답을 회피한 채 “내부 서류를 외부에 공개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한 뒤 “명예회장의 정신상태는 멀쩡하다”고만 대답했다.
왕회장 서명의 진위 논란이 엉뚱하게 왕회장의 판단력 문제로 비화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럼 왕회장은 하루 간격으로 마음이 바뀐 것일까. 재계에서는 정황상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호주 상속자인 장남(MK)의 강력한 설득에 왕회장의 마음이 흔들렸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아무리 이전투구의 경영권 다툼이라 해도 MK가 왕회장의 서명을 조작하는 것은 현대가의 분위기로 볼 때 상상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 회사 지분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현대경영자협의회 회장직을 차지하기 위해 MK가 무리수를 감행했다는 것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재계 관계자는 “쉽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왕회장 건강 문제가 이번 경영권 파동에서 ‘태풍의 눈’이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MH측 주장처럼 왕 회장의 마음은 애당초 ‘집안은 MK, 사업은 MH’구도를 갖고 있었는데 MK측이 이를 무산시키기 위해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 전보 파문 등을 일으킨 것이라는 주장도 배격하기 어렵다. 어쨌든 ‘왕심 미스터리’는 분명한 지분정리나 법적 효력을 갖는 문서작성 등의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한 제2의 경영권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윤순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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