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러시아’.27일 대통령에 당선된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끌어 가려고 하는 러시아호의 미래상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구소련 해체 이후 혼돈과 무질서에 빠져 쇠락한 러시아를 강한 국가로 복원하는 것이 푸틴의 정치적 목표라는 것은 체첸침공 강행 등 그가 보여준 정치적 행보로 미뤄 너무나 분명하다.
“소련의 붕괴를 슬퍼하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다.” “러시아인은 유전적으로 강력한 정부를 지지한다.” 푸틴의 말은 그가 국가주의자임을 보여준다.
이런 목표를 가진 푸틴의 러시아는 무질서했지만 다원적 민주주의를 추구했던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의 시대와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통치 스타일이 옐친과 달리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이 뚜렷하다. 국가보안국(KGB) 출신이라는 경력, 의외의 인물로 지난해 말 옐친에 의해 대통령 권한대행에 임명된 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전쟁과 언론 장악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음모적인 모습, 그가 만든 12개의 대통령 중 절반이 군사문제라는 점 등 그의 정치적 행보와 취향은 과거 차르와 공산당서기장들이 풍겼던 권위주의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일부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은 앞으로 푸틴 통치 하의 러시아에서는 권위주의체제가 강화하고, 사회는 군국주의화하며, 언론은 탄압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들은 특히 군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푸틴의 성향으로 미뤄 그가 반대파에 철권을 휘두르는 ‘새로운 차르’로 러시아에 ‘새로운 스탈린주의’를 심으려 할지 모른다고 비판한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이날 러시아가 다시 전제주의로 돌아가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같은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또다른 자유주의자들은 지난 10년간 언론의 자유, 복수정당제도의 발전, 정보의 자유 등을 통해 자유의 숨결을 맛본 새 세대의 욕구를 억누를 수는 없을 것이며 푸틴의 시대가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푸틴이 대내정치에서 그동안 집권세력으로 군림해온 ‘올리가르히’나 공산당 등 야당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는 아직 전망하기가 어렵다.
그가 최근 인터뷰에서 체첸 공격과 관련해 밝힌 “선제공격이 중요하다. 그것도 적이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타격이어야 한다”고 말한 철학을 다시 어떤 분야에서, 어떤 형식으로 보여줄지 주목된다.
총리 후보로는 테크노크라트인 제1부총리 미하일 카샤노프(42), 경제학자 게르만 그레프(36), 재무부 부장관 알렉세이 쿠드린(39)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가 권위주의적 통치술을 구사하더라도 경제에 있어서는 시장경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상트 페테부르크 수석 부시장 재직시 사유제산제, 공기업 민영화 등을 추진하면서 시장경제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인식을 확고히 했다는 게 러시아 언론의 분석이다.
푸틴은 지난 1월 안보독트린을 개정하면서 ‘핵 선제공격 금지’조항을 삭제하는 등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대내정치와 경제 문제 해결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미국과는 ‘예측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 게 미국 안보전문가들의 다소 희망섞인 전망이다.
남경욱기자
kwbn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