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떠난다.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말 대통령직을 전격 사임하면서 한 고별사가 블라디미르 푸틴의 대통령 당선으로 현실화됐다.
옐친이 던진 승부수대로 순조롭게 권력승계가 이뤄졌다. 이미 대통령 법령으로 옐친과 가족의 신변을 보장한 푸틴은 옐친의 남은 여생에 대한 ‘안전판’역할을 할 것이다.
대통령직 사임 후 옐친의 행보는 재임 기간중 럭비공처럼 튀었던 것과 사뭇 달랐다.
1월에 가족과 함께 성지순례차 이스라엘을 방문, “성지에 오니 성자가 된 기분”이라며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전화통화중 다극화 세계를 위한 국제정치재단 설립 구상을 밝힌게 고작이다.
그는 오는 10월 ‘한밤중의 일기’라는 재임기간의 회고록을 미국 출판사를 통해 출간할 예정이다.
옐친은 20세기말 급변하는 역사의 물줄기 한 가운데 서있었다. 1991년 12월 구소련을 일방적으로 해체시키며 세계질서를 재편했다.
1993년 자신의 개혁방향과 대립하는 의회를 탱크로 진압하는 등 위기상황을 강경책으로 돌파하곤 했다.
1998년과 1999년 금융위기와 공산당이 장악한 의회와의 대립으로 숱하게 사임압력과 탄핵위기에 처했지만 옐친은 그 때마다 쓰러지지 않고 오뚝이 처럼 일어났다.
심장, 폐, 간, 신장, 척추 등 신체 어느 한 부위도 성치않아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불린 옐친은 술에 취해 저지른 기행과 특유의 강한 성격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시장경제로의 전환과정중 발생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사위와 딸의 축재와 권력남용 등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1931년 우랄산맥의 공업도시 스베르들로프스크주 인근 농촌마을인 부크가에서 태어나 1955년 우랄공업대를 졸업, 건설노동자로 출발한 옐친은 ‘초대 러시아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길 바라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은 옐친이 아닌 푸틴의 손에 달렸다. 푸틴의 러시아호가 경제번영을 구가하고 탄탄한 국가질서를 유지할 경우, 그에게 드리워졌던 그림자는 지워질 것이다.
최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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