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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人 함석헌의 가슴을 읽는다 '젊은 날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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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人 함석헌의 가슴을 읽는다 '젊은 날에...' 출간

입력
2000.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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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에 만나야 할 시인 함석헌/송현 지음. 명상 발행거인의 풍모는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함석헌(1901-1989)은 그래서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한국의 간디, 우리 시대의 양심, 민중의 대변자, 지사적 사상가, 민족혼의 역사가, 겨레의 예언자, 민권운동가, 민족의 스승, 종교가, 언론인, 싸우는 평화주의자…. 불의와 독재에 맞섰던 영원한 야인(野人) 함석헌.

그가 시를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문학사전에 시인 함석헌은 없다. ‘수평선 너머’(1963년 출간)라는 단 한 권의 시집을 남겼지만, 그것으로 그를 시인 대접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셨던 시인 겸 칼럼니스트 송현의 생각은 다르다. 함석헌의 진면목은 시에 있으며, 그는 ‘세례 요한과 같은 예언자적 시인’이라는 것이다. ‘시인 함석헌을 모르면 함석헌을 모르는 것’이라며 내민 것이 이 책이다. 시를 통해 그의 삶과 사상을 전한다. ‘시인 함석헌을 몰라보는 한국 문단의 한심한 안목’을 개탄하면서 심오한 사상과 통찰력, 언문일치의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우리말을 멋지게 구사했던 뛰어난 시인 함석헌을 소개한다.

‘…웃음 밑에 숨는 시내 같은 울음/ 기쁨 속에 잠기는 암초 같은 슬픔/ 노래 뒤에 감추인 폭풍 같은 크나큰 한숨/ 사나운 물결 미치는 바다 같은 이 세상에 노질하다가/ 하늘의 영원한 님 향해 울부르는 기도지/ 그래, 오 그래, 절망에 부르는 이김의 노래지’(‘싸우는 생(生)’의 마지막 단락)

고난의 현대사, 그 거친 광야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던 예언자 함석헌은 가슴 속에 이처럼 맑디 맑은 시의 샘물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시인 함석헌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 진짜 시냐’고 시비를 건다. 지은이는 함석헌의 ‘씨알 시론’을 통해 ‘어중이떠중이’의 ‘맹물 같은’ 가짜 시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더러 창에 찔린 듯 뜨끔하거나 불쾌할 수도 있다. 죽은 시인이 살아있는 시인을 부끄럽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씨알 시론’이 뭐냐. ‘씨알’은 모든 생명의 핵으로서 민중을 가리킨다. ‘씨알 시론’에 따르면 “글은 씨알의 것이고, 그래서 씨알에서 나오고 씨알로 돌아간다.” 시는 씨알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긁어부스럼’이요, 씨알의 맺힌 것을 풀어주는 ‘울음’이요, 내 마음에 하는 ‘칼질’이다. 따라서 시인 함석헌은 “도끼 자루가 썩는 줄 모르고 달과 바람과 별만 쳐다보는 예술가들과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출발점이 다르고,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씨알 시론’으로 무장한 지은이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은 시’ ‘문장도 되지 않는 소설’을 쓰며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구름에 달 가듯이 어딘가로 정처 없이 가고 있는’ 문인들한테 욕을 퍼붓고 있다. 그런 비난은 물론 참된 글, 참된 시를 바라는 열망의 표현일 것이다.

시인 신경림은 “원래 큰 장사는 잔기술 없이도 씨름에 이기는 법”이라며“선생은 이미지니 메타포니 형상이니 하는 시적 잔재주를 몰랐고 그래서 오히려 더 힘있게 받아들여지는, 잔재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 큰 장사다운 측면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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