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입은 했으나 압축기와 재료가 없었다. 압축기는 참기름 짜는 기계로 대용했다. 낡은 음반을 수집해 숯불에 달군 철판에 녹여 찍어냈다. 여러번 듣고 나면 일본 노래가 섞여 나왔다.’‘신라의 달밤’ 작곡자인 박시춘씨가 당시를 회상하면서 썼던 글(한국일보에 연재됐던 ‘나의 이력서’)의 일부. 1908년 9월 이동백이 부른 ‘적벽가’, 1925년 안기영의 창가 ‘내 고향을 리별하고’가 발매된 이래 한국의 레코드사(史)는 시대만큼이나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일군 한국의 초기 음반사는 어느 한 곳에서조차 음반을 제대로 보관하고 있는 곳이 없어 그대로 절명의 위기에 있는 게 사실.
신나라뮤직이 1925-1960년 우리나라 SP 시대의 음원 복원 작업을 위해 기획한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의 두번째 수확인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Ⅱ(1945-1960년)’가 발매됐다. 12장의 CD에 218곡의 노래가 복각됐다. 3여년이 걸린 작업이다. 신나라뮤직은 이미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 Ⅰ’(CD10장 ·190곡), ‘유성기로 듣던 불멸의 명가수’(23장·440곡), ‘근대 판소리 5명창’ ‘유성기로 듣던 연극 모음’ 등 우리 근대 이후 발매된 5,000여장의 SP음반 중 3,000장을 찾아내 복각 작업을 해왔다. 1980년초 자료 수집을 시작했고, 1988년부터 복각 작업에 들어갔으니 10년 넘게 걸린 작업이다.
‘유성기로 듣던 가요사Ⅱ’에는 남인수 백설희 현인 박재란 장세정 황금심 신카나리아 나애심 백난아 도미 이미자 패티김 한명숙 등 1960년까지 SP 음반을 낸 가수들의 대표곡은 물론 ‘백치 아다다’ ‘장희빈’ 등 영화 드라마의 주제곡도 실렸다.
음반과 함께 나온 ‘해설집’과 ‘가사집’은 우리나라 초기 음악가들에 관한 훌륭한 데이터베이스. 가수, 작곡 작사가들의 한자 이름과 대표곡은 물론 가요의 흐름까지 분석돼 있다.
유행만 있고, 기초작업은 터무니없이 빈약한 우리 가요계, 훌륭한 교과서 하나가 나온 셈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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