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점진적으로나마 이루어지면서, 정치 권력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화했다. 정치 권력이 비워놓은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언론의 힘이다. 물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정치권력이 ‘언론관리’ 또는 ‘홍보조정’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정치권력이 그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마 영원히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19세기 말 근대 신문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의 한국 언론이 최고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 권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 검열을 하는 기자는 아마 드물 것이다. 문공부의 홍보조정실이 보도지침이라는 것을 통해서 기사의 단수나 사진 게재 여부까지 간섭하던 10여년 전의 ‘야만적’ 상황은 그야말로 지난 세기의 전설이 되었다.
정치권력의 독단과 부패를 견제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그 점에 관한 한 지금의 한국 언론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독재정권 시절과는 사태가 역전돼 이제는 언론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이 언론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원칙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면 언론은 누가 견제하는가? 시민 사회의 형성이 미약한 한국에서 언론은 거의 견제받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언론은 정치권력 못지 않은 권력이고 더구나 그것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데도, 그것을 견제할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 사회에서 어떤 세력에 대한 견제는 논쟁과 비판을 통해서, 곧 담론을 통해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담론의 장(場)을 언론이 장악하고 있어서 언론에 대한 비판은 나오기 어렵다. 더구나 한국의 언론은 자기 비판이나 상호비판에 익숙하지 않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한국의 신문은 다른 신문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칭찬하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은 언론학자들에 의해서 ‘침묵의 카르텔’이라고 명명됐다. 그 침묵이 언론계가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보다 특별히 더 깨끗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론은 우리 사회의 모든 일을 성역 없이 보도하지만, 오직 언론계에 대해서만은 침묵한다. 그래서 언론계는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성역이 되었고, 일반 독자들은 언론계의 일을 쉽게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언론계의 일이 궁금한 독자들이 그 궁금증을 해소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독자는 매주 목요일에 신문 가판대에 가서 주간 신문 ‘미디어 오늘’을 사보면 된다. ‘미디어오늘’은 1995년 5월에 전국언론노동조합 연맹(언노련)의 기관지 ‘언론노보’의 후신으로 출발했다. 초대 발행인은 당시 언론노련 위원장이던 이형모(현 한국방송공사 부사장)씨였다. 그러니까 이 신문은 창간 당시에는 언노련의 기관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대 발행인 손석춘(현 한겨레 여론매체부장)씨를 거쳐 현 발행인 남영진(전 한국일보 기자)씨가 취임한 1999년 6월부터 언노련에서 분리돼 독립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미디어 오늘’의 지면은 한국 언론계의 속사정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언론 자본에 얽힌 이런저런 비리 사건이기도 하고, 어떤 기사가 부풀려지거나 축소되거나 조작되거나 표절된 뒷이야기이기도 하고, 논설이나 시사만화에 대한 비평이기도 하다. 신문에 나지 않는 신문 소식을 전하는 ‘미디어 오늘’은 ‘신문의 신문’이고 ‘담론에 대한 담론’인 셈이다.
언론계 내부의 일을 전해주는 매체로는 한국기자협회에서 내는 ‘기자협회보’도 있고 지난 주에 복간된 ‘언론노보’도 있지만, 이런 매체들은 언론계 종사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배포되는 비매품이어서 일반인들은 접하기 어렵다. ‘미디어오늘’은 일반인들이 언론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문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홈페이지 주소는 www.mediaonul.com이다.
■창간사
우리가 오늘부터 향하고자 하는 곳은 언론의 ‘심층’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국의 언론을 작동시키는 본질적인 힘의 실체와 그것들의 운동방식을 밝혀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언론이 사회를 향해, 개인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들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평가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작업의 과정과 결과를 국민과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민의 가슴을 대변해 주는 언론을 전망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럴 때만이 우리는 거대 자본의 이해에 함몰되어 국민의 입장을 외면하는 언론을 배척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미디어오늘’을 통해 보여줄 언론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때로는 참회록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정한 언론, 국민의 편에 서있는 사랑받는 언론을 기대하는 우리들의 의지와 희망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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