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회장, 장기화될땐 와해우려 공식발표 결정“정몽헌(鄭夢憲·MH)회장을 잘 도와주시오.”
현대그룹 정몽구(鄭夢九·MK)회장은 27일 그룹 경영자협의회 참석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현대그룹 경영권 후계 투쟁에서 패배했음을 보름만에 공식 인정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안팎의 예상과 달리 형제들의 대권분쟁을 비교적 빨리 매듭짓기 까지 MH측의 치밀한 시나리오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 MH진영은 MK측이 ‘그룹회장 유임’을 주장한 26일 오후 정주영 명예회장을 찾아가 ‘MH 단일회장’안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한 뒤 “27일 오전 소집해놓은 경영자회의에 명예회장이 참석해 직접 밝혀 달라”고 건의했다. 명예회장 친필서명의 진위여부에 매달려있던 MK측보다는 한발 앞서 나간 셈이다.
정명예회장도 26일 저녁 TV뉴스를 보고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평생 쌓은 ‘현대 아성’이 송두리째 무너질 우려가 크다고 판단, 양측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한 자리에서 공식 발표하기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김재수(金在洙)구조조정위원장은 “집안일은 몽구회장에게, 그룹경영은 몽헌회장에게 맡긴다는 것이 명예회장의 뜻”이라고 이번 인사의 성격을 규정했다.
○…정명예회장이 이날 경영자협의회에서 정몽헌회장체제를 선언함에 따라 현대그룹의 5개 소그룹 분할작업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현대는 우선 상반기 중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정공 등 자동차관련 계열사를 묶어 ‘자동차그룹’(MK관할)으로 분리할 방침이다. 이어 2001~2002년 중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을 묶어 ‘중공업그룹’으로 분리해 정몽준(鄭夢準)의원 관할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키로 했다.
나머지 전자(현대전자, 현대정보기술 등) 건설(현대건설, 현대아산) 금융·서비스(현대종합상사, 현대상선, 현대증권등) 등 3개소그룹은 정몽헌회장이 직접 경영하게 된다.
○…현대 주변에서는 이날 결정으로 후계 문제는 가닥을 잡았지만 뇌관인 유산분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은 정명예회장의 주식(현대건설 4.49%, 현대중공업 11.56%)이다. 현대건설은 현대상선, 현대상선은 현대증권의 대주주이다. 때문에 현대건설과 현대중공업의 주식을 모두 승계받으면 소그룹분할과 관련없이 현대그룹을 통째로 손안에 넣게 된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MK가 이날 순순히 그룹 회장직을 내놓기로 한 것은 일단 후퇴한 뒤 후사를 도모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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