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에 나선 서울 모지역구의 A후보는 요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불법옥탑방에 세든 사람들과 건물주들이 찾아와 “옥탑방에 부과된 벌금과 철거명령을 유예시켜 달라”고 조르기 때문. A씨측은 “불법행위를 합법화해 달라는 요구지만 정작 ‘안된다’는 대답은 못하고 있다”고 곤혹스러워 했다.선거판에 쏟아지는 지역구민들의 민원이 갈수록 도를 넘고 있다. 선거때면 으레 나오는 그린벨트 해제, 개발구역 지정 및 해제요구 등은 오히려 ‘점잖은’ 민원. 개인 취직부탁서부터 내 집앞 골목길 개·보수, 재판에 대한 압력행사 등에 이르기까지 상식이하의 요구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예외없이 “내 말 한마디에 기백표가 달려있다”는 ‘협박’이 따라 붙는 것은 물론이다.
서울 모지역구 후보들에게는 “2,000표가 걸린 문제”라는 집 앞 버스정류장 신설문제가 최대 선거현안이 되고 있는가 하면, 지방의 B후보는 “장애등급을 올려주지 않으면 ‘표를 움직이겠다’는 협박까지 받고있다”며 “이는 의사에게 가짜진단서를 발급해 달라는 격 아니냐”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이밖에 “철거명령을 취소시켜 달라” “취직 좀 시켜달라” “아파트에 입주하려 하는데 양도세를 줄여달라” “값 싼 변호사를 소개시켜 달라” “고도제한을 풀어서 재건축 아파트 층수를 높여달라”는 등 선거를 개인 이익 도모의 기회로 삼으려는 유권자들이 선거사무실마다 줄을 잇고 있다.
심지어 지방의 C후보는 “모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시 예산을 따내 아파트 베란다에 섀시를 일괄 설치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렇지만 후보들로서는 딱 부러지게 거절할 수 없는 입장. “도저히 안되는 일”이라면서 설명하려 들면 바로 욕설이 뒤따른다.
여당의 한 후보측 인사는 “동교동 실세라면서 그 정도 민원에 쩔쩔 매느냐는 호통에 잠도 오지 않는다”라고 곤혹스러워 했고 모 야당후보측은 “4선의 중진이라고 무게만 잡았지, 지역구에 해준 게 뭐 있느냐고 몰아칠 때는 정말 난감하다”고 하소연했다.
이 때문에 후보들은 그래도 대부분의 요구에 대해 “노력해 보겠다”는 등의 듣기좋은 말로 얼버무리고 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D후보는 “가스충전소를 다른 동네로 옮겨달라”는 민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미 있는 것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면 같은 선거구인 그 쪽 주민들은 가만있겠느냐”는 것이다. 지방의 E후보는 “선거구민들이 아파트 가압류 해지 소송에서 이길 수 있도록 ‘재판부에 힘을 써달라’고 하는데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이냐”고 머리를 흔들었다.
서울의 F후보는 “말로는 바른 정치를 할 국회의원을 뽑자면서 실제로는 구악(舊惡)의원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국회의원은 슈퍼맨이 아니고, 또 그렇게 돼서도 안된다”고 답답해 했다.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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