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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열전] (4) '태조 왕건' 이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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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열전] (4) '태조 왕건' 이환경

입력
2000.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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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치열한 삶이란 참 아름답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드는 사람이다. KBS가 방송 사상 최대 규모인 200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4월 1일 첫방영을 기다리는 대하사극 ‘태조 왕건’, 그리고 사극으로선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KBS ‘용의 눈물’의 작가 이환경(50). 그는 선 굵은 드라마를 쓰는 몇 안되는 남자 작가 중 한 사람이다.그는 이 두 마디로 자신의 삶과 작가 생활을 정의한다. “실의의 날들 속에서도 실날 같은 희망은 언제나 떠나지 않았다.” “방송작가는 저주받은 직업이다.”

‘용의 눈물’이 ‘이환경의 눈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두 아이의 도시락을 챙겨주고 병원으로 직행, 대장암 수술을 세차례나 받은 아내를 간호했다. 병실 구석에서 항암제를 맞은 아내가 내지르는 비명 속에서 대본을 썼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들 방송작가가 저주받을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가난은 초등학교만을 졸업한 그에게 가출을 강요했다. 건설현장, 공장 등을 누비며 안 해본 일이 없다. “엿장수 등 100여 가지 일을 해봤지요.”

씁쓸한 웃음 속에 그의 지난했던 고통이 배어난다. 하지만 그가 접지 않은 꿈 하나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칭찬을 받았던 글쓰기에 대한 집착이다. 일을 하면서 엄청난 독서를 했고 이때 쓴 독후감만 대학노트로 30여 권에 달한다. 군제대 후 1981년 노동판에서 우연히 본 KBS작가 워크숍 공고는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 문법조차 몰라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지원했다. 타고난 글 실력이 있어 TV문학관 몇 편을 썼다. 결혼도 했다. 하지만 단막극 쓰는 것으로 생활이 되지 않았다(남자 방송작가가 부족한 것은 극본으로 생활이 되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지사에 취직해 2년 동안을 다녔다. 아내는 이 시절을 가장 행복해 한다. 쌀을 정기적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대한 욕구는 그를 다시 글에만 매달리게 만들었다. 아내는 세탁소로, 노동판으로 나갔고 그는 방송사 작가실에서 선배들 잔심부름을 하며 점심을 때웠다.

‘전설의 고향’을 1986년부터 3년간 집필하면서 야사(野史)의 묘미를 알았다. 그리고 닥치는대로 역사 문헌과 자료를 탐독했다. 이것이 훗날 집필한 사극들의 토대가 됐다.

이환경은 드라마의 주류였던, 소소한 가정사를 다루는 홈드라마와 멜로물에서 물러나 자신의 색깔을 표출하고 싶었다. 선이 굵은 남성의 세계를 다루는 것으로, 자신의 드라마의 정체성을 세워 나갔다. 유지광의 일대기를 다룬 ‘무풍지대’, 주먹의 세계를 다룬 ‘적색지대’, 율산기업의 흥망사를 다룬 ‘훠이 훠이’ 등을 통해 남성의 특성인 의리와 야망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면서 방향을 잡아나갔다. 이어서 역사의 이면인 야사를 다룬 ‘파천무’ ‘비검’을 집필하면서 정사(正史)에 대한 도전의식이 싹텄다. 다큐드라마 ‘역사 라이벌’을 맡으면서 자료를 모았다.

그는 철저히 자료와 고증에 의존한다. ‘용의 눈물’도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집필했다. ‘태조 왕건’의 자료를 3년 간이나 준비한 것에서 철저함이 엿보인다. 고려사에 대한 자료는 북한 쪽에 많다는 말을 듣고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동포 등을 통해 많은 자료를 구했다.

“작가정신을 포기하면 사기꾼이 된다. 시청률이 내려가더라도 자기가 원래 생각한 작품 세계를 끝까지 고집해야 한다.” 이같은 말은 글을 일부 수정한 연출자에게 대본을 내던진 사건이 우연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는 큰 덩치에 엄청난 말술을 마신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가정.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지만 사랑 이야기는 못쓰겠다고 머쓱해한다.

그의 소망은 병상의 아내가 건강을 회복해 ‘태조 왕건’ 을 보면서 “당신 극본 참 잘 썼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다.

◇약력

1950년 인천 출생·50세

1962년 주안초등학교 졸업

1981년 KBS TV문학관 ‘갯바람’으로 작가 데뷔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

1986년 ‘전설의 고향’(KBS·3년간 집필)

1988년 ‘무풍지대’(KBS)

1989년 ‘훠이 훠이’(KBS)

1990년 ‘파천무’(KBS)

1991년 ‘적색지대’(KBS)

1993년 ‘비검’(KBS)

1994년 ‘역사의 라이벌’(KBS·2년간 집필)

1997년 ‘용의 눈물’(KBS·19개월간 집필)

2000년 ‘태조 왕건’(KBS·4월 1일 방영 예정)

배국남기자

knbae@hk.co.kr

입력시간 2000/03/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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