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작가들의 해외 활동이 알찬 성과를 더해가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최한 ‘한국문학작품 낭독회’가 22일 독일 함부르크, 23~24일 라이프치히 2개 도시에서 3차례 열려 현지 독자와 문인, 교민과 언론의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낭독회에 참여한 작가들은 소설가 한수산(54) 신경숙(37)씨와 시인 김광규(59) 김혜순(45)씨 등 4명. 이들은 모두 독일 펜드라곤 출판사가 간행하는 한국문학 시리즈에 작품이 번역된 작가들이다. 정혜영(59) 한양대 독문과 교수는 행사 진행 및 통역을 맡았다.
특히 ‘함부르크 문학의 집’에서 열린 낭독회는 함부르크 주정부가 1997년 처음 한국 작가들의 낭독회를 열어 현지 문학팬들의 큰 관심을 확인한 후 두번째로 주최한 것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독일측의 지속적 관심을 실증한 행사였다. 또 라이프치히 낭독회는 독일 최대의 출판기업인 베르텔스만 클럽이 먼저 제의해 개최된 것으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과 함께 독일의 양대 도서박람회로 꼽히는 라이프치히 도서전의 공식초청 행사로 열려 한국문학의 세계 홍보에 큰 역할을 했다.
매 행사에는 100여 명 가까운 청중이 몰렸다. 이들은 참석한 문인들이 현 한국문단의 중견과 신예를 포괄하고, 독일의 문학전통과는 다른 저마다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리측 참여 작가들도 예상치 못했던 독일 청중의 반응에 얼마간 긴장하기도 하는 모습들이었다.
김혜순 시인은 가부장제 사회에 저항하는 여성의 의도적 자의식 분열을 충격적 언어로 표출한 ‘백마’ 등을 낭송했다. 한수산씨는 곡마단의 몰락과 해체를 감동적인 우수의 문체로 그린 장편 ‘부초’, 신경숙씨는 1970년대말 이후 젊은이의 고통스런 성장의식을 담은 장편 ‘외딴 방’, 김광규 시인은 한국현대사와 정치에 대한 비판적 메타포를 담은 ‘어둠 속 걷기’등을 낭독했다.
낭독회에 이은 토론에서 한 독일 물리학자는 “작가들의 작품이 공통적으로 ‘시간’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 여자 청중은 김혜순씨의 자아에 대한 관찰 방식에 충격받았다며 “유럽 여성들은 자신의 동일성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자아가 다수로 쪼개질 수 있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경숙씨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들고 작가의 사인을 받으러 온 열성 교민팬들도 많았다. 이들은 ‘외딴 방’의 주인공에게서 자신을 보았다며 소설 속의 주인공이 바로 작가 자신인지 묻기도 했다. 신씨는 이에 대해 “소설가는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현재와 이어진 과거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외딴 방’을 썼을뿐”이라고 답했다.
정혜영 교수와 베르텔스만클럽의 에버하르트 라이만 문화담당이사(문학박사), 시인이기도 한 귄터 부트쿠스 펜드라곤 출판사 사장의 공동사회로 진행된 라이프치히 낭독회에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마티아스 폴리티키, 동독 출신의 베스트셀러 소설가 잉고 슐츠 등 독일의 촉망받는 작가들이 다수 참석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세계 문학의 첨단적 흐름에 결코 무관하지 않은 한국 작가들의 문제의식과 함께, 고유한 한국적 주제의식과 표현기법에 대해 질문을 쏟아부었다. 특히 청중들은 남북한 문학교류와 북한 문학작품의 소개현황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기도했다.
독일은 고대 이래의 문학낭독의 전통이 지금까지도 맥맥히 살아있는 나라. ‘함부르크 문학의 집’의 경우 지난 2월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방문했고 그간 토니 모리슨, 폴 오스터 등 세계적 작가들이 낭독회를 열었다. 김광규 시인은 “우리와는 달리 독일 작가들의 낭독회는 작품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중요한 매체이다. 작가들은 책의 출판 이후는 물론 이전에도 서점 등 문화공간에서 열리는 각종 낭독회에 참여해 독자들과 대화하고 작품세계를 설명하며 이는 주요한 수입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한수산씨는 “이번 낭독회에 참여해 보고 우리도 문학낭독회를 독자와의 새로운 통로로 현실에 맞게 발전시켜 나갔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라이프치히= 하종오기자
■獨 바이스 문화장관, "한·독 문학교류 더 활발해져야"
“작가들은 특별한 의미에서 한 나라의 지성인의 대표입니다. 한국과 독일의 문인들이 지속적 유대관계를 맺어 문학교류의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두번째로 ‘한국문학작품 낭독회’를 개최한 독일 함부르크 주정부 크리스티나 바이스(47·사진) 문화부장관은 “문학은 다른 문화 장르에 비해서도 훨씬 더 깊이있는 인간의 근원성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며 한·독 문학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바이스 장관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독일에 당대의 한국문학이 활발히 소개될 수 있도록 한 독일측 산파다. 두차례 독일 현지 낭독회 개최와 진행을 주도한 정혜영(59) 한양대 독문과 교수가 적극적으로 그를 접촉해 ‘함부르크 문학의 집’ 관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에 우리 문학에 관심을 갖고 첫 낭독회를 열었다. 이후 한국과 독일의 작가들은 매년 상호 방문하며 문학행사를 열고 있다. 이번 낭독회에도 주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형예술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문학도인 그는 장관직을 맡은 후에는 독일 연방정계에서도 인정받는 맹렬 여성정치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양국 문학교류 성공의 조건은 첫째 서로가 상대방의 문학에 매혹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둘째 재정적 지원이 따라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에서도 인터넷 열풍이 문학독자를 앗아가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전화나 TV처럼 인터넷의 바람도 일상화하면 잠잠해질 것”이라며 “독일에서는 젊은이들이 ‘쓴다는 것’과는 완전히 멀어졌던 시기도 있었다. 인터넷은 오히려 그나마 내용은 차치하고, 쓴다는 행위 자체를 부활시키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함부르크는 13세기 한자동맹 이래 상업으로 번성해 온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브람스, 멘델스존이 태어났고 하이네가 활동했으며 현대에는 비틀스가 이름을 알린 문화의 고장이기도 하다. 매일 도시 전역에서 문학낭독회를 비롯해 연극·뮤지컬 등 평균 300개의 문화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함부르크가 나은 뮤지컬 ‘캐츠’와 ‘오페라의 유령’은 15년 이상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독일 최대의 신문 ‘디 자이트’와 최고의 주간지 ‘슈피겔’ 본사가 이곳에 있다.
바이스 장관은 “문화적 자유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함부르크에서 한국 문학이 세계화하는 발판을 마련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바쁜 직무수행 중에도 라이프치히 도서전시회에 최근 간행한 자신의 저서 ‘도시는 무대이다’를 출품, 도서전 현장에서 독자들과 만나기도 했다.
/함부르크=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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