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홍보대행사 이모(34·여)실장. 채팅, 게임, 정보검색, 동호회 활동 등 PC통신과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매일 인터넷 메일을 통해 친구들과 안부를 교환하고 사이트 서핑을 통해 아이디어도 얻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홍보업무를 시작하면서 생긴 긴장성 두통이 컴퓨터만 켜면 사라진다. 그는 “사이버 공간에 들어서면 안방에 들어 누운 듯 평온한 느낌”이라고 말한다.뉴욕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다 일시 귀국한 김하나(27·여)씨. 그는 일정안 거주지가 없다. 찜질방이나 캡슐방에서 잠을 해결한다. 주활동 무대는 PC방. 6개월 정기권을 끊어 출판기획, 번역 등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여가도 대부분 인터넷 카페에 들르거나 PC동호회 활동으로 보낸다.
두 사람은 사이버 중독증? 천만의 말씀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단순히 각종 정보를 얻는 차원을 넘어 정서적 만족감까지 느끼는 사이버 코쿤족이다. 코쿤(cocoon)은 누에고치를 뜻하는 영어. 마치 누에고치 안의 애벌레가 시간이 지나면 예쁜 나비로 변하듯, 사이버를 창조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뿐더러 누에고치 안의 애벌레처럼 정신적 만족감을 느끼는 세대를 말한다.
김하나씨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십분 알리고, 불필요한 술자리나 접대 없이 만족할 만한 일거리를 얻을 수 있어 실제 생활보다 훨씬 생산적이다”라고 말한다. 김씨에게 사이버는 생산의 도구이자 모든 인간관계의 매개체이며 오락까지 책임지는 만능 공간인 셈이다.
서구에선 ‘인터넷 중독’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반대하고 사이버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연구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사용이 정서적, 문화적 폐해도 낳았지만, 분명 유용성이 있고 폐기해버릴 수 없는 새로운 매체이기 때문이다.
용인정신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씨는 사이버 코쿤족을 두 부류로 나눈다. 이실장의 경우 현실의 불안감, 긴장감을 해소하고 편안한 취미생활 처럼 사이버를 즐기는 협의의 사이버 코쿤족. 김하나씨는 사이버 공간을 장악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즉 사이버라는 거대한 세계를 하나의 코쿤으로 보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두어 넣는 광의의 사이버 코쿤족으로 볼 수 있다.
협의의 코쿤족은 사이버 공간에서 불안, 강박 등 정신적 장애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해소하기 때문에 오히려 개인의 정신건강을 지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처음 인터넷을 접한 사람이나 어린이는 주위 도움이 필요하다.
광의의 코쿤족은 ‘쌈장’이나 ‘대박’처럼 아주 드문 케이스. 자칫 잘못하면 현실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위험성도 크다. 하씨는 “우리 사회구조가 이미 정해진 질서 안에 편입돼 있어 현실에선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며 “하지만 수평적인 사이버 커뮤니티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광의의 코쿤족에 해당한다면 사이버중독이나 정서장애에 빠지지 않도록 몇 가지 테스트를 해보는 게 좋다. 첫째, 사이버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을 점검해 본다. 양적인 개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인터넷을 하는 시간 중 진짜 업무나 학업에 도움이 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다.
둘째, 접속할 때마다 항상 찾아가는 사이트가 몇 개인지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셋째, 사이버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때의 장점과 단점을 적어 비교해 본다. 넷째, 위의 데이터에 따라 사이버 공간이 자신에게 유용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계획을 세운다. 만족한다면 주변사람에게 자신의 인터넷 사용행태가 어떤지 물어보고 혹시 지나친 면은 없는지 확인한다. 자신이 느끼기에, 혹은 주변사람이 보기에 문제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씨는 “이런 평가를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다면 모든 인터넷 사용이 정신장애를 불러올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며 “사이버 공간이 사회와 개인의 창의력과 경쟁력을 높이고 인간관계를 확대하며 정서장애를 해결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적극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사이버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인간인 이상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며 정서적 교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씨의 결론은 이렇다. “인터넷은 하나의 매체고 미디어일 뿐이다. 두려워 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대범하게 바라보라. 그럴 때 인터넷은 자신의 삶을 확장시켜 주는 유용한 도구가 될것이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