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여러모로 보아 한국과 비슷하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고해졌다고는 하지만 지구상에 여전히 이데올로기 문제로 인해 나라가 갈라진 곳이 남·북한과 중국·대만이다. 대만이 최근에 51년만에 처음으로 선거에 의해 정권이 교체된 것도 2년여전 대통령 선거로 여·야가 바뀌어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것과 닮은 꼴이다. 그러나 한국과 대만과의 관계는 1992년 국교단절 이후 소원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당선자가 당선 직후 전화를 걸어올 만큼 절친한 친구인 경남대 강명상교수와 지난해 대만 지진때 파견돼 인류애를 꽃피운 중앙119구조대 최진종대장. 대만을 잘 알고, 대만이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나 대만을 얘기했다._ 두 분은 대만과 남다른 인연이 있지요.
강명상 = 대학입학부터 84년 경남대 교수로 오기까지 16년간 살았어요. 기자생활도 하고 대학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다보니 대만의 여·야 지도자는 물론 언론계 등에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은 제 대학 스승이고 천수이볜 당선자도 오랜 친구이지요.
최진종 = 저는 지난해 9월21일 대만에서 지진이 발생한 후 구조하기 위해 간 것이 처음입니다. 이후 11월 6일 아시아태평양청소년자원봉사자회의에 대만정부 초청으로 한번 더 다녀왔습니다.
_ 대만에서 119구조대의 인기가 대단했다면서요.
최진종 = 타이중(臺中)현 아파트 붕괴현장에서 당시 여섯살인 장징홍(張景宏)군을 87시간만에 구해낸 것이 TV에 생중계됐습니다. 현지 신문에서도 우리 구조대를 ‘영웅’으로 대서특필했죠. 또 선진국 구조대들은 호텔에서 기숙했는데 우리는 이재민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텐트를 치고 24시간 구조활동을 펼쳤던 게 대만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줬던 것같습니다. 이후 한국인이면 택시요금을 안받거나 구조대가 길을 지나가면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엄지손가락을 하늘로 치켜세우며 “한궈(韓國), 한궈”라고 연호했습니다. 지나가는 청소년들로부터 사인공세도 많이 받았지요. 구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갈 때는 그곳 사람들이 몰려들어 “우리를 위해 일했는데 보답하자”며 장비를 옮기는데 도와 주기도 했습니다. 공항에서는 기립박수까지 받았지요.
강명상 = 그때 굉장했죠. 구조대의 활동은 국교단절 후 껄끄럽던 대만과의 관계를 해소하는 데 큰 공헌을 했죠. 잘 아는 대만의 방송국 보도본부장으로부터 “대만인들이 한국과 가까워지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여러 각도에서 취재했다”는 말도 전해들었습니다.
최진종 = 사실 장군을 구해주기 전까지만 해도 대만이 우리 구조대를 대하는 태도는 시큰둥했습니다. 사고가 크게 난 곳은 미국과 일본 스웨덴 스위스 등 선진국 구조대에 맡겼고 우리는 별로 할 일이 없는 곳에 배치받았죠. 장군을 구조한 곳도 사실은 다른 나라 구조대가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없다고 판단해 철수한 곳이었어요.
강명상 = 대만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후 가장 먼저 우리나라를 승인했습니다. 한국전쟁 때도 대만 대사관 직원들은 다른 나라처럼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 정부가 대전 대구 부산으로 후퇴할 때 함께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92년 한국이 국교를 단절했으니 배신감을 크게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벌어진 틈을 이번 우리 119구조대가 많이 좁혔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진종 = 대만에서 한국식당에 들어갔는데 식당주인인 한국인 아주머니가 “외교단절후 배신자 취급을 받으며 지냈는데 구조대의 활동으로 한국인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면서 울더군요. 또 지난해 크리스마스때 대만의 청소년들로부터 카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중에서 어려울 때 참된 정을 볼 수 있다는 뜻인 ‘환란중견진정(患亂中見眞情)’이란 글이 기억납니다.
_ 천수이볜 당선자가 경남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지요.
강명상 = 천수이볜 당선자는 78년 그가 인권 변호사이던 시절 알게 돼 지금까지 교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서로 말이 잘 통해서 대만에 있을 때 자주 만나 술도 함께 마시곤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대만에 출장갈 때면 꼭 만나고 수시로 전화도 자주 합니다. 95년 타이베이(臺北)시장에 당선되고 나서 언젠가는 큰 인물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당시 박재규(朴在圭·현 통일부장관)총장에게 건의해 한국으로 초청, 명예정치학박사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도 두 번 한국에 초청해 만났습니다.
최진종 = 가까이에서 본 천수이볜 당선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강명상 = 다정다감하고 매우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또 논리적이고 남의 얘기를 귀담아 들으며 약속을 반드시 지킵니다. 대만에 있을 때 한번은 전화를 하다 인사말로 “한 달 후에 저녁이나 함께 하자”고 말하고 깜빡 잊고 있었는데 한달 후 어김없이 전화가 와서 “약속이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 중국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8덕(신의인애화평충효·信義仁愛和平忠孝)중 가장 앞에 나오는 믿음(信)을 가장 중요시 하고 매우 가정적인 사람입니다. 자기 절제도 잘해 술을 마시고 기분 좋다고 2차, 3차에 휩쓸리지 않고 떠난다는 시간에 정확히 떠납니다. 술은 독한 술을 좋아하지 않고 맥주를 즐겨 마시지요. 그는 또 말썽이 날 만한 데는 절대 가지 않습니다. 너무 몸사리지 않느냐고 말했더니 “복잡하게 얽히는 일은 안한다 ”고 말하더군요. 그런 그릇이기에 그를 총통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차기쯤 당선될 것이라고 보았지 이렇게 빨리 총통이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을 못했습니다. 사실 이번 총통 당선은 그의 인간적인 매력도 중요한 요인이 됐지만 그보다는 국민당의 분열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죠. 꼭 2년전 한국의 대통령선거와 비슷합니다.
_ 천수이볜 당선자로부터 당선후 전화까지 받았다고 하던데요.
강명상 = 당선이 확정된 날 아침 8시 전화가 왔습니다. 쉰 목소리로 “고맙다”고 하더군요.
최진종 = 선거에 무슨 특별한 도움을 줬습니까.
강명상 = 선거 전에 팩스를 통해 격려편지를 보냈지요. 편지 말미에는 당선을 미리 축하한다는 ‘예축당선(豫祝當選)’이란 글을 썼지요. 그런 격려가 고마웠던 것이겠죠.
_ 앞으로 대만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강명상 = 대만의 정권교체가 관계를 개선하는데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구조대의 활동으로 대만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아진 것도 한 몫은 했지만 무엇보다 이번에 정권을 잡게 된 천수이볜 등 민진당 관계자들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무척 존경합니다. 그들은 9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통령이 당선되자 “다음은 우리 차례”라며 김대통령을 하나의 모델로 삼았지요. 김대통령이 당선된 날 일산 자택까지 찾아간 민진당원도 있죠.
최진종 = 저는 외교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대만에서 얼마 있지 않았지만 기성세대는 몰라도 적어도 그곳의 청소년들은 한국에 대해 매우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대만에 가보니 한국산 비스킷과 라면이 많이 들어와 있고, 삼성 등 국내 기업이 많이 진출해 발전소나 도로를 건설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민간부문에서의 교류가 보다 확대된다면 보다 좋은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명상 = 인기듀엣 클론이 대만에서 CD가 60만장 이상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클론 멤버중 구준엽씨가 경남대 출신이지요. 사실 그들이 대만에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쿵따리 샤바라’라는 히트곡을 낸 뒤 별로 인기를 못끌자 제가 아는 대만의 방송국 관계자에게 부탁해 그곳 방송프로그램에 출연케 한 것이 계기가 됐죠. 이런 것들이 다 민간외교가 아니겠습니까. 민진당이 현 정부에 호감을 갖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는 중국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옛 일(국교단절)에 얽매일 필요도 없습니다. 대만이 정권이 교체되는 만큼 우리 정부도 대만을 상대하기가 홀가분해졌습니다. 탄력적으로 대만을 상대해야 합니다. 외교적으로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대만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대만의 경제력을 생각하면 지금같은 단절관계는 도움이 안됩니다.
●강명상(姜命相)
1947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68년 고교졸업후 대만으로 유학, 국립 정치대와 대학원을 거쳤고 중국문화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땄다. 75∼79년 합동통신사, 80∼84년 서울신문 대만특파원을 지냈다. 84년부터 경남대 국제언어문화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며 중국관계연구소 소장, 한국노장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21세기의 중국대륙’등 20여편의 저서와 번역본을 냈다.
●최진종(崔珍鍾)
1957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다. 한국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전남대 행정대학원과 뉴욕주립대에서 각각 정책학 및 재난관리행정을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소방간부후보생 3기생으로 83년 소방공무원이 돼 전남도 구조구급과장, 보성소방서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중앙119구조대장에 임명됐으며 대지진이 발생한 터키와 대만에 파견돼 눈부신 구조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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