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변호사, 김형태(金亨泰·44). 자신은 극구 손사래를 치지만 그가 튄다는 것을 부인하는 법조인은 거의 없다.사람좋은 웃음을 짓다가도 법정에만 들어서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그를 보고 나면 판·검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만다. “제가 튄다고요? 제 딴에는 원칙대로 사는 거예요.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의 원칙, 그걸 포기할 수는 없죠.”
그는 임수경(林秀卿)씨, 문규현(文奎鉉)신부 방북사건, 10여년에 걸친 사당동·돈암동 철거민 변론 등을 맡으며 인권·민권운동가로서의 명망을 얻어왔다.
하지만 그가 전국적으로 튀게 된 건 지난해 11월 파업유도 의혹사건의 특별검사보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서부터다. 특검수사 초기부터 “대검 공안부를 쳐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였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제가 남아 있었어도 결과는 크게 안 달라졌을 겁니다. 특검제가 도입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결국 문제는 사람이었어요. 한마디로 역부족이었던 거죠.”
서슬이 퍼렇던 유신말기를 대학에서 보내고 군사정권의 출범과 함께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그이지만 학창시절에는 그저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 정해진 길을 따라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했고 막연히 사회악을 뿌리뽑겠다는 생각에서 검사를 지원하려고 했다.
그런데 검사시보로 있던 1982년 그의 앞길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된 어느 택시회사의 노조위원장을 조사한 것이다.
아무리 추궁해봐도 그는 무죄였고 오히려 경영진이 불법노동행위를 일삼았다는 확신뿐이었다. 노조위원장을 무혐의로 석방하고 회사 전무를 노동조합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청이 발칵 뒤집혔다. 일개 시보가 사건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고 불호령이 떨어졌고 전무는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노조위원장은 벌금형에 처해졌다. 김변호사는 “처리방식은 서툴렀을지 모르지만 지금도 노조위원장이 무죄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이 사건이후 그는 검사의 꿈을 접었다. 그의 인생도 격동적으로 바뀐다. 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창립멤버로 ‘튀기’ 시작한 뒤 93년부터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상식적인 법정신을 믿는 그이기에 억울한 사람이 더이상 고초를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 김 훈(金 勳)중위 위문사 사건 등에 팔을 걷어붙인 것도 그의 작은 소망 때문이다.
“누군가는 해야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을 일에 매달리다 보니 새천년이 됐네요”라며 소년처럼 웃는 김변호사는 “새천년에는 제가 튈 일이 없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튈 곳을 찾는 열혈청년이다.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새천년 이사람’시리즈 이번 회에 소개된 김형태변호사는 3월18일 게재된 축구국가대표 최용수선수가 추천했습니다.
추천이유: 인권변호사로서 김변호사가 평소에 불쌍한 사람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온데 감명을 받았다. 특히 김변호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을 통해 그늘진 이웃의 아픔을 진정으로 다독거려왔다. 아무리 급변하는 세상이라해도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은 소중히 지켜져야할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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