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연구개발·Research & Development)의 대명사인 미국 하이테크 대기업들이 벤처기업을 통째로 인수해 신기술을 습득하는 ‘A&D(인수개발·Acquisition & Development)’에 골몰하고 있다. 독자적인 R&D 만으로는 급변하는 기술혁신에 대처할 수 없는데다, 새로운 상품을 신속하게 개발해 시장을 선점하는, ‘스피드 경영’이 하이테크 업계의 화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미국 인터넷 장비분야의 선두주자인 시스코 시스템스사는 최근 제트셀 등 벤처 2개사를 5억달러에 인수, 무선인터넷 분야의 기술을 강화했다. R&D를 위해 수십억달러를 투자하는 것 보다 벤처 기업을 인수해 기술을 축적하는 게 더 경제적이기 때문.
마이크 울피 수석부사장은 “하나의 신기술을 얻기 위해 보통 벤처 15개사 정도를 둘러 본뒤 매입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약 146억달러를 투입해 무려 18개 벤처사를 매입한 시스코는 올해에도 무선과 시큐리티 기술에 우위를 보이는 유럽과 이스라엘의 벤처 20~25개사를 사들일 계획이다.
시스코의 벤처기업 매수방법은 대부분 주식교환방법. 고가의 자사 주식을 벤처측에 일정 비율로 준뒤 그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기 때문에 현금은 한푼도 안들어가는 셈. 시스코의 주식시가총액은 약 4,500억달러로 마이크로소프트(MS·약 4,900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
시스코가 벤처기업 수십개를 인수하는 것은 전혀 부담이 안된다.
반도체 대기업 인텔도 지난 15일 덴마크의 반도체기술회사인 GIGA를 12억5,000만달러에 매수했다고 발표했다. GIGA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인텔의 기술력을 크게 보강해줄 전망.
캐나다의 통신기기전문 대기업인 노텔 네트웍스도 이날 미국의 광(光)전송용 스위치 제조회사인 카이로스를 주식교환방식으로 인수한다고 밝혔다. 모두 신기술 확보의 일환으로 단행된 기업 인수합병(M&A)이다.
하이테크 대기업의 A&D 붐은 벤처 측에도 도움이 된다. 독자적인 상품판매 등에 한계가 뚜렷한 벤처는 대기업에 흡수됨으로써 자사 기술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거액의 운영자금을 확보한다.
미국의 한 벤처캐피털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내에서 외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은 벤처는 전년보다 40% 는 4,000개사나 된다.
그만큼 벤처 간에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때문에 설립때 부터 주식공개가 아니라 관련 대기업에 인수되는 것을 목표로하는 벤처들도 많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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