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요? 나 하고는 별 상관 없습니다.”2000년 3월, 대구는 이제 더 이상 한국 정치의 중심이 아니다. 맞든 틀리든 이 지역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선거 얘기를 건네면 “우리는 껍데기 아닙니까” “뭐 될대로 되겠지요”라는 냉소적인 반응만 되돌아 온다.
주변부로 내쫓긴 데 대한 허탈감, 권력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데 대한 소외감이 무관심으로 전화(轉化)한 듯 하다. 이 지역의 무관심층이 전국에서 가장 두텁다는 사실은 각종 여론조사가 뒷받침하고 있다.
마음 줄 데가 없다 수산물 도매업을 하는 김상구(36)씨는 “어느 당이 어떻고 누구는 저떻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 맛이 안난다”고 했다. 택시 기사 정근채씨(35)도 “먹고 살기가 바빠서인지 손님들에게서 선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솔직히 나도 우리 지역구에서 누가 나오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모 정당 관계자의 말. “ARS를 돌리면 90%가 곧바로 전화를 끊는다. 10% 가운데 절반 이상은 ‘모르겠다’고 답한다.”
대구에서 민주당 지지자를 찾기는 힘들다. 부딪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민주당은 싫다”고 했다. 정부 여당의 실정이 너무 많고 대통령의 말을 믿기 어렵다는 게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 “자민련은 밉고, 민국당은 우습다”는 말도 많았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대구 경북을 대표하는 당이 아니다” “아무래도 못 미덥다”라는 의견에서부터 “딱히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반응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한나라당 공천이나 이회창(李會昌)총재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좋고 싫음이 절반 가량된다.
박규근(朴圭根·40·상업)씨는 “이회창총재가 이번 공천에서 청산 대상 인물을 낙천시킨 것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고 했다. 반면 회사원 장모(47)씨 “이회창씨는 대권욕에 사로잡혀 자기 인물 중심의 공천을 했다”며 못마땅해했다.
그래도 한나라당인가. 김모변호사(36)는 “(투표할 생각이 없지만) 투표를 하게 된다면 적극적인 선택이 아니라 소극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차례의 대선에서 모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찍었지만 이제는 DJ가 싫어졌다”고 말했다. 좋아서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덜 싫어서 찍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택시 기사 김수복(金壽福·59)씨도 “그래도 투표소에 들어가면 한나라당 후보를 찍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5대 총선때의 반(反)YS 정서가 자민련으로 쏠린 것 처럼 이번에는 반DJ 정서가 한나라당쪽으로 흡수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측과 궤를 같이하는 반응이다.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는 사람도 물론 있었다. 중소기업인 N모(43)씨는 “현 정권들어 지역 차별이 심해지고 있다는 말이 많다. 야당을 지지키로 했는데 민국당은 야당으로 보기에 문제가 많다”고 했다.
의사 김현균(金賢均·37)씨는 “선거가 다가오면 한나라당 바람이 드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무관심층.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4월로 넘어가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정할 것이고 그 방향은 한나라당쪽이 될 것임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대구=최성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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