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은 ‘봄맞이강’이다. 바다를 달려와 뭍에 다다른 봄기운은 이 강변에 이르러 숨을 돌린다. 봄은 맑은 강물에 몸을 씻고 오색단장으로 기운을 차린 후 한달음에 지리산을 넘어 백두대간을 타고 북으로 오른다. 지금 섬진강에는 단장에 바쁜 봄이 고스란히 머물고 있다.전남 구례에서 경남 하동으로 향하는 섬진강변북로(19번 국도)는 답사작가 유홍준씨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꼽은 길. 강 건너 전남 광양시의 경계를 타고 달리는 강변남로(861번 지방도로)도 이에 못지않게 멋진 도로다. 섬진강의 봄은 이 두 길가에 모두 나앉아 있다.
여행객을 맞는 봄의 첫 전령은 노란색 산수유꽃. 전북 남원시에서 전남북의 경계인 밤재터널을 지나면 왼쪽으로 지리산온천이 보인다. 온천 뒷마을인 상위마을(구례군 산동면)이 산수유 세상이다. 약재로 쓰는 산수유열매 생산량이 전국의 60%를 넘는다. 개나리와 비슷한 맵시를 가진 산수유는 수백그루씩 군락으로 피는 게 특징. 일제히 만개하면 산자락이 온통 노란색 안개에 젖는다. 올해에는 개화가 다소 늦다. 18, 19일 산수유축제가 열렸지만 만족할 만큼 활짝 피지는 않았다. 이번 주말께면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본다.
구례를 떠나 하동쪽으로 달리다보면 산자락이 희끗희끗하다. 매화다. 강북에서 매화가 그럴듯하게 피는 곳은 토지면 송정리. 토지초등학교 송정분교 옆의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을 한참 올라야 제대로 매화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매화는 서막에 불과하다. 강남쪽에 어마어마한 매화마을이 기다리고 있다.
하동으로 가는 길의 양켠에는 꽃나무 가로수가 심어져 있다. 일부러 심어놓은 벚나무이다. 벚꽃길은 계속 이어지다가 쌍계사 입구의 벚꽃터널에서 완성된다. 아직 꽃망울만 살이 잔뜩 쪄있다. 4월초나 돼야 개화할 듯하다.
하동을 우회해 섬진교를 지나면 광양시. 다리를 지나자마자 우회전하면 강변남로로 접어든다. 5분쯤 달리면 섬진나루다. 몇 척의 조각배가 떠있는 전형적인 촌나루이다. 모래 위에 올라온 나룻배 사이로 동네 강아지들이 뛰어 놀며 숨바꼭질을 한다.
다시 5분을 더 달리면 서서히 눈이 부시다. 매화마을이다. 1920년대부터 마을 농가에서 매화나무를 이식했다. 연간 생산하는 매실은 100여톤. 산 전체에 매화구름이 걸려있다. 나라에서 인정하는 매실장인 홍쌍리씨의 청매실농원(0667-772-4066)이 이 곳에 있다. 청매실농원은 매화농장이라기 보다는 이제 근사한 공원이 됐다. 매실을 담가놓는 굵은 항아리가 보기좋게 도열해 있고, 매화밭 사이사이로 산책길을 냈다. 농원 본부건물에는 통나무 탁자를 여기저기 설치하고 매실차와 과자를 공짜로 맛보게 하는 분위기 좋은 사랑방도 만들었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무척 친절하다.
사진작가나 화가들이 많이 찾는 곳은 장독대 아랫길을 지나 오르는 능선. 꽃이 만개하면 이 쪽 능선의 사람은 꽃에 파묻혀 보이지 않고, 저쪽 능선의 사람만 눈에 띈다. 어디선가 사진작가가 찍은 청매실농원의 사진을 본다면 그 것은 90%가 이 골짜기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매화도 올해에는 늦었다. 11, 12일 열렸던 매화축제는 꽃봉오리축제에 그쳤다. 매화도 이번 주말 만개할 예정이다.
봄기운에 겨운 섬진강의 물빛은 짙은 초록이다. 오랜 가뭄에 모래톱이 하얗게 넓어져 그 색깔이 진한 대비를 이룬다. 초록의 대열에 동참하는 것이 또 있다. 대나무숲이다. 길가에 군데군데 숲을 이루고 있는 대나무는 겨울 먼지를 벗고 파란 색깔을 되찾았다. 그 색깔에서는 더운 느낌마저 묻어난다. 봄이 떠나면 섬진강변은 어느 새 여름을 맞을 것이다.
/구례·하동·광양=글 권오현기자
■섬진강주변 '범패' '쌍계사' 사찰 가볼만
섬진강 여행의 덤은 산사를 찾는 즐거움이다. 지리산 남녘의 역사 깊은 절들은 너나 없이 섬진강을 굽어보고 있다. 쌍계사(雙磎寺)와 칠불사(七佛寺)가 대표적이다.
쌍계사 입구는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로 유명한 화개마을이다. 마을에서 15리 벚꽃길을 지나 쌍계교를 넘으면 1,2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쌍계사가 자리하고 있다. 쌍계사의 원래 이름은 옥천사(玉泉寺). 722년(신라 성덕왕 21년) 대비와 삼법이라는 두 화상이 지었다. 그 후 820년(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 혜소(慧昭)가 중국에서 차(茶)의 종자를 갖고 들어와 절 주위에 심고 큰절로 중창해 왕으로부터 쌍계사란 이름을 받았다. 쌍계사는 우리 불교음악인 범패가 비롯된 곳. 진감국사는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했고 이를 우리 민족에 맞는 범패로 만들었다. 쌍계사의 팔영루는 수많은 범패명인을 배출한 음악교육의 장이다.
칠불사는 쌍계사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10여㎞를 오르면 해발 800㎙의 산중에 들어있다.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부처가 된 자기 아들을 위해 지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지리산의 절과 암자 중에서도 참선하기가 가장 좋은 곳이어서 예로부터 수도승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절은 현대사 속에서 지리산의 아픔을 대변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웅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들이 한국전쟁 당시 작전상의 이유로 불태워졌고, 남아있는 건물들은 1970년대 복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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