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이 21일 식품의약국(FDA)의 담배 규제 권한을 부정, 담배 제조업체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강력한 금연정책을 추진했던 빌 클린턴 행정부와 금연운동 단체에 비상이 걸렸다.대법원 판결은 FDA의 권한에 대한 판단일뿐 담배의 유해성 여부를 직접 논한 것은 아니며, 결과적으로 담배 규제에 대한 이니셔티브는 의회로 넘어간 셈이됐다.
■판결 내용
FDA는 1996년 담배를 ‘중독성 약물(drug)’으로 분류, 18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담배 판매를 금지하고 담배 광고와 판촉 활동을 제한토록 규정했다. 또 27세 미만의 담배 구매자에게는 신분증을 제시토록 하고 담배 자동판매기 설치 장소를 술집 등 성인 구역에 국한시켰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담배 회사들이 1998년 이같은 FDA 규정을 제소하고 항소법원이 “담배 규제권은 의회에 있다”고 판시한데 대한 확정이다.
■판결 근거와 소수 반론
대법원은 5대4로 FDA의 규제 조치를 월권행위라고 판시했다. 판결의 근거는 한마디로 말해서 현행법상 담배가 그렇게 위험한 것이라면 아예 시장유통을 금지시켜야한다는 법 논리에 맞는다는 것이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 판사는 “FDA는 철저하게 담배가 안전하지 않고 위험하며 고통과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고 규정했는데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FDA는 시장에서 담배를 제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FDA가 규제하는 모든 제품은 근거 법률에 따라 안전과 효능이 보장돼야 하는데, 담배는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FDA의 규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FDA는 그동안 급격한 금연 조치가 흡연자들에게 심리적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소극적인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한편 소수 의견을 낸 스티븐 G. 브레이어 판사는 “이 특수한 약물은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에 행정부가 규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다수 의견을 낸 판사 두사람은 현재 흡연자, 다른 한 판사는 담배를 끊은 사람이고 소수 의견을 낸 판사를 포함해 반대를 던진 판사 4명은 모두 비흡연자다.
■백악관과 금연 단체의 입법 촉구
클린턴 대통령은 “우리가 어린이들을 담배의 폐해로부터 보호하려고 한다면 의회는 즉각 FDA에 규제권한을 부여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심장협회 사무총장인 M. 카스휠러도 “의회가 나서서 미국 청소년들을 위해 ‘홈런’을 쳐야할 때”라고 말했다. 담배의 광고방송과 항공기내 흡연 금지 및 경고문안표기 등은 이전에 의회가 취한 조치들이다.
■담배 회사의 재정 부담은 여전
이번 대법원 판결이 각종 담배 피해 배상 소송으로 인해 담배 회사들이 직면해 있는 엄청난 재정 부담을 덜어 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필립 모리스사 등 담배 회사들이 이미 빗발치는 흡연 피해자들의 공세적 사법 대응으로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담배회사들은 흡연 피해를 이유로 주정부들에 2,460억 달러를 배상키로 한데 이어 연방 법무부와 추가로 수십억달러의 배상 소송을 진행중이다.
또 이번 판결과 별도로 대부분의 주정부들은 18세 미만자에게 담배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흡연 예방 조치를 시행중이다. 다만 주식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의 조심스런 희망 속에 말보로의 필립 모리스와 카멜 및 윈스턴의 RJR 토바코 홀딩스 주가가 각각 2%와 3% 올랐다.
김병찬기자
bckim@hk.co.kr
입력시간 2000/03/2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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