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4.13] 국부유출 누구말이 맞나국부창출인가, 국부유출인가. 금융기관과 공기업, 민간기업등 국내자산 해외매각(외국인투자)의 국민경제적 결과를 놓고 ‘국가경제의 파이가 커졌다’는 정부·여당과 ‘국가자산을 헐값으로 해외에 팔아넘겼다’는 야당간 논쟁이 한창이다.
국가채무 공방처럼 여야간의 ‘선거재료’로 불거진 이슈이기는 하나, 외국인투자 문제는 결코 일회성 설전(舌戰)으로 끝낼 사안은 아니다. 더구나 외국자본을 일방적으로 ‘국부의 침탈자’ 로 규정하거나, 무조건적인 ‘구세주’로 이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본의 국경이 사라진 개방경제시대에 불가피한 선택인 외국인투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또 정부는 어떤 정책적 입장을 취해야 할지 점검해 본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국부 유출론의 요체는 “외환위기 발생 초기 우리 정부가 외화유치 목표를 정해놓고 실적위주로 국내기업의 외국매각을 서두르는 바람에 업체들이 헐값에 넘어가고, 은행과 주요 산업의 외국 종속화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이한구(李漢久)선대위 정책위원장은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국내기업이나 자산을 외국에 팔았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정상적인 매매를 지원해야 할 정부가 내국인에게는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고 외국인에게는 내부정보를 갖게 만들어 불공평한 거래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위원장은 “당시 여유있는 국내기업이나 재력가들조차 좋은 투자거리가 나와도 정부의 서슬 때문에 매물을 살 수 없었다”면서 “30대 이상 재벌은 부채비율 충족에 발목이 묶인 상태에서 팔기만 하라는 압력을 받았을 뿐 다른 기업이나 재산을 취득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 말한다.
이위원장은 “정부·여당은 ‘장부가액보다 높게 팔렸으니까 헐값 매각이 아니다’고 주장하지만, 장부가액 100원짜리가 몇년 뒤 1,000원으로 실제가격이 올랐는데도 공포 분위기 속에 500원에 팔렸다면 그것이 어떻게 해서 제값을 받은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위원장은 “국부유출의 또다른 축은 아직도 잘못된 제도 때문에 외국기업에 역차별 당하는 국내기업이 많다는 점”이라며 “외국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현 정부의 편향적 편의제공을 등에 업고 아주 적은 비용으로 국내시장에 진출한 뒤 국제적 독과점을 행사할 위험성이 커졌는데도, 이를 막을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위원장은 “‘외국인 투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식으로 외자도입을 하는 바람에 원화절상 압박이 커지면서 수출 경쟁력은 약화하고 수입은 급증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외국인에게만 사실상 입찰가격을 주는 식의 공기업 매각, 방어 시스템조차 없는 자본 자유화 및 외환 자유화 시책, 잦은 비굴외교 사례 역시 국부유출과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민주당은 외국인 투자를 ‘국부(國富)유출’로 연결시킨 한나라당의 주장을 “국가경제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위험한 불장난”이라며 정부와 함께 ‘쌍끌이 공세’를 퍼붓고 있다.
특히 20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정치권이 시대착오적인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공세가 더욱 거세졌다.
더욱이 한나라당 부산출신 의원들이 삼성자동차의 해외 조기매각을 정부측에 촉구하자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스스로 국부유출론의 허구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국인 투자는 국부유출이 아니라 국부창출이며, 국내 기업의 자금조달을 쉽게 하고 국민들도 주가상승으로 이득을 얻는 ‘윈-윈게임’이라는 것이 민주당의 확고한 태도. 김원길(金元吉)선대위정책위원장은 “이제는 기업의 국적보다는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는 곳이 어디냐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외국인투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이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또 “기업매각은 시장가치에 의해 이뤄지므로 과거 손실이나 어두운 미래수익 전망이 반영돼 장부가보다 낮게 매각될 수 있다”면서 7,000억원을 더받은 대상그룹의 라이신부분과 976억원의 웃돈을 받은 두산의 맥주사업 매각 등을 예로 들어 헐값 매각 주장을 일축했다.
민주당은 “투자유치에 관한한 아직은 국제수준 미달”이라고 강조한다. 98년 기준으로 외자유치액이 미국 1,934억달러, 영국 631억달러, 중국 455억달러인 반면 우리는 52억달러에 불과하다는 것.
이같은 공세는 ‘외자유치 배격론이 곧바로 한국을 배타적 국수적 국가로 인식시켜 외국자본의 철수로 이어진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김한길 선대위 기획단장은 22일 “서울에 있는 일본인 투자자클럽이 최근 한국 정가의 국부유출논란을 심각히 논의, 재경부에 문의를 해 올 정도로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김성호(金成鎬)부대변인은 논평에서 “IMF경제파탄의 주범인 한나라당이 또다시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려 국가부도로 이끈다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외국인 직접투자 GDP대비 7.5%
외국인 투자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외국기업이 우리나라에 현지법인을 세우거나(신주취득), 국내기업의 지분 일부 또는 전부를 직접 인수하거나(구주취득) 또는 현지법인이 외국본사로부터 5년이상 기한으로 돈을 빌려오는(장기차관) ‘직접투자’다.
반면 증권시장에서 주식 또는 채권을 사는 것은 ‘간접투자’에 해당한다.
직접투자는 국내 기업활동(영업이익)을 목적으로 들어오는 자금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장기자본이고 생산 및 고용창출효과가 크다.
반면 간접투자는 포트폴리오(자본이익) 자금인 만큼 증시부양 효과는 크지만 유출입이 잦고 생산·고용창출 효과는 별로 없다. 최근 여야간 국부유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주로 국내자산 매각 및 외자유치, 즉 외국인 직접투자 쪽이다.
환란(換亂)이전까지만 해도 금리 임금 지가 등의 고비용구조에다 행정규제가 워낙 많아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은 극히 미미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이후 공기업민영화 등 달러확보를 위한 전방위 드라이브, 부채비율 200% 달성을 위한 대기업들의 외자유치, 외국인투자규제 철폐 등에 힘입어 98년에는 88억5,000만달러(허가액 기준), 지난해에는 155억4,000만달러로 늘어났다. 금년 목표는 160억달러.
그러나 경제규모에 비해 우리나라의 외국인투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작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국인직접투자비율은 7.5%로 미국(8.4%) 영국(21.5%)등 선진국은 물론, 싱가포르(81.6%) 말레이시아(38.1%) 중국(23.5%)에도 훨씬 못미치고 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외국인투자 전문가는 어떻게 보나
외국인투자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거의 일치한다. 개방시대의 외국자본 유치는 불가피한 선택이고, 결코 그 자체를 국부유출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투자의 순기능은 크게 국내고용 및 부가가치 창출 선진 경영기법 및 기술도입 소액주주 보호 등으로 요약된다.
금융연구원 이장영(李長榮)박사는 “외자유치로 외환보유액이 늘어났고, 국내 생산·고용이 유발됐으며 대외신인도가 올라갔다”며 “더구나 외국인 지분이 높아진 상장기업 및 금융기관 사례를 볼 때 대주주 독단 대신 경영 투명성이 높아지고 그만큼 소액주주의 권익도 신장됐다”고 말했다.
‘헐값매각’시비 역시 매각가격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헐값’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홍익대 경제학과 박원암(朴元巖)교수는 “무엇이 헐값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설령 생각보다 낮은 가격이라해도 시장안에서 자발적이고 정상적 딜(deal)에 의해 성사된 값이라면 그것은 헐값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헐값’논란때면 늘 거론되는 제일은행이 대표적 사례. 한성대 김상조(金尙祖·경제학)교수는 “들어간 돈에 비하면 제일은행은 확실히 싸게 팔렸다. 그러나 팔지 않고 국영은행 체제를 유지했을 때 투입될 추가 공적자금 등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다른 대안은 없었다고 본다.
(대우차등) 일부 부실기업에 대한 한시적 공기업화 주장도 있지만 공기업화는 추가적 국민부담을 수반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 풍토상 성공 확률은 높지 않아 바람직한 대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장영 박사도 “제일은행은 우리 스스로 구조조정능력이 없었던 탓에 그런 가격에 팔린 것이다. 서울은행도 헐값시비로 HSBC와 매각협상을 결렬됐지만, 추가 공적자금 수요나 대외신뢰도 영향등을 감안하면 매각지연이 더 많은 비용과 부담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외자유치가 적극적으로 장려·촉진할 사안이라고 해도 외환유동성이 개선됐고, 구조조정도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만큼 ‘무차별적 외자도입’‘실적위주의 외자유치 드라이브’는 지양돼야 한다는 충고가 지배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黃仁鶴)산업실장은 “부채비율 200% 경우처럼 시한을 정해놓을 경우 외자유치 및 자산매각 가격산정에서 국내기업의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앞으론 전적으로 기업 자유의사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공기업 민영화나 금융기관 매각시 외국인은 되고, 국내재벌은 안된다는 ‘역차별’문제도 어떤 형태로든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원암 교수도 “외국자본유치를 위한 투자환경은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되 양(量)채우기식 외자유치보다는 국민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투자 하나하나의 내용을 심도있게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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