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된 소형TV등 검소생활에 '깜짝'세계적인 갑부인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이 17인치 국산 컬러TV를 바꾸는데 12년이 걸렸다. 정 명예회장은 22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을 아들 정몽구(鄭夢九)회장에게 물려주고 종로구 가회동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날 정 명예회장의 짐을 옮기면서 인부들은 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0년은 족히 넘었을 듯한 옷과 가재도구가 즐비했던 것.
무엇보다 인부들의 눈길을 끈 것은 청운동 자택에 놓여있던 TV. 여느 평범한 가정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1988년 LG전자산 17인치 제품이었다. 한국 최대재벌의 총수가 거실 한 복판에 놓아두고 늘 보는 TV로는 믿겨지지 않는 ‘골동품’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아직도 쓸만하다”며 이 TV를 그대로 가회동으로 옮기라고 했으나, 비서진이 “시력도 좋지않은데 안된다”고 우겨 이번에야 겨우 50인치 신품 국산TV로 교체했다.
이 뿐 만이 아니다. 한 인부는 “재벌회장 집이라 해서 으리으리 할 줄 알았는데 주방 벽 타일이 심하게 낡아있는 등 예상 밖의 검소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현대 관계자는 “타일을 교체하자고 아무리 건의해도‘왜 쓸데없는데 돈을 쓰느냐’고 말해 그대로 뒀다”고 전했다.
정 명예회장이 이사한 가회동 집은 대지 615평, 건평 149평의 2층 건물.
1층 거실에는 시중에서 몇십만원이면 살만한 베이지색 천 커버의 7인용 소파와 탁자가 자리잡았고 안방에는 2인용 침대 1개와 높낮이 조절용 1인용 침대 1개만 달랑 들여졌다.
집을 둘러본 이웃 주민은 “각 방의 침대며 식탁 모두 단순하기 이를데 없다”며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모양새보다 전혀 나을 것이 없다는데 놀랐다”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을 키워오면서 임직원들에게 늘 “배도 안부르는 담배를 뭐하러 피우느냐” “외화만 낭비하는 커피는 뭐하러 마시느냐”고 핀잔을 주며 검약을 강조해왔다. 60년대 초까지 구두굽 가는 값을 아끼기 위해 구두굽에 쇠징을 박고 다녔고, 70년대초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입었던 작업복을 지금까지 입고 다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갑부라는 것은 잘 실감하지 못하며 그저 ‘부유한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업을 벌이자마자 남의 투자금으로 최고급 외제차를 몰면서 룸살롱에서 흥청망청 해대는 젊은 벤처기업가들이 귀담아 들을 대목이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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