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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막전막후] 연극의 맛이 살아 있는'돼지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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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막전막후] 연극의 맛이 살아 있는'돼지비계'

입력
2000.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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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이란 푸줏간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곳은 벌건 고기에 시퍼런 칼날이 박히고, 테크노 음악이 광란하는 아수라판이 아닐까. 극단 대학로 극장이 요즘 선거철, 때맞춰 공연중인 ‘돼지비계’의 풍자는 치명적 수준이다.한번 웃어나 보자는 저잣거리나 TV 정치 만평의 차원이 아니다. 정치와 돈, 정치와 섹스 등 정치의 이면에 도사린 음험한 논리를 생생히 폭로한다. 풍자와 공격의 기운이 자욱하지만, 연극적 상상력으로 그 무게를 비껴날 줄 아는 무대의 호흡이 유쾌하기까지 하다. 연출자 박근형씨는 “연극적 맛이 살아 있는 무대”라 말한다.

동네 깡패 비계가 3선 당선에 눈 먼 국회의원 대촌에게 고용돼 벌이는 선거 운동을 둘러 싼 풍경이다. “시의원, 국회의원, 대통령을 선거로 뽑는 민주주의는 더럽다"며 그는 노회한 3선 의원 대촌의 휘하로 가고 만다.

무대 소품으로는 소파 하나, 책상 하나, 푸줏간의 거대한 돼지 고기 모형뿐. 어떻게 보면 단순한 무대지만 뒷면 벽에 수시로 바뀌는 갖가지 포스터들과 다양한 최신 가요 등에 힘입어, 무대는 날렵하게 변신할 줄 안다. 푸줏간, 선거사무실, 유세장 등으로.

무대와 객석의 벽이 여지 없이 허물어 진다. 도입부, 어슬렁대던 돼지비계가 객석으로 성큼 와서 맨앞의 여성 관객을 한쪽 어깨에 얹어서 막후로 데려 간다. 잠시 후, 무대는 언제 그런 일이 벌어졌냐는 듯 천연덕스레 공연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극의 후반부에서 유세장 할머니로 다시 나온다. 현실(객석)과 비현실(무대)이 연극에서만 가능한 방식으로 그렇게 맞물린다. 정치꾼들에게 일반인이란 조작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소적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최정우(대촌 역)의 명확한 동작과 발성, 남우성(비계 역)의 건달 연기 등 배우들의 절도 있는 동작은 소극장 연극에서만 가능한 미니멀리즘의 매력을 만끽하게 한다. 최씨의 말을 빌면, 눈동자 굴리는 소리까지 들리는 소극장만의 매력. 5월 14일까지 대학로극장. (02)764-6052

장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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