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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4.13 / 국가채무 누구말이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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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4.13 / 국가채무 누구말이 맞나

입력
2000.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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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4.13] 국가채무 누구말이 맞나우리의 나라빚은 도대체 얼마인가. 여야의 논쟁은 핵심을 짚고 있는가.

사실상의 국가채무가 428조원에 달한다는 야당(한나라당). 세계공통의 국제기준에 따라 국가채무는 108조원 뿐이라는 정부여당. 4·13 총선을 앞두고 국가채무규모를 둘러싼 양측의 공방이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비록 선거국면에서 불거져 정당간 ‘정치구호’로 변색되고 있기는 하나 국가채무 문제는 우리 자신 보다는 후손들의 행복을 담보하고 있는, 그런 까닭에 결코 흔한 ‘정쟁(政爭)거리’로 넘길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모든 국민이 고민하고 추이를 지켜봐야 할 국가적 숙제다.

여야의 주장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국가채무감축과 재정건전화를 위한 생산적 토론과 합리적 해결책을 모색해 본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국가채무 428조원 주장에 대해 “거짓 이야기로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악의에 찬 행위로서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반국가정당”이라는 격문까지 나올 정도로 민주당의 분위기는 험악하다.

우선 문제삼는 것은 ‘428조원 주장’의 허구성.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IMF기준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중앙·지방정부가 직접적인 원리금 상환의무를 지고 있는 채무이며, 지난해 연말 기준 국가채무는 108조1,498억원이라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국내총생산 대비 22.3%로 일본(97.3%) 프랑스(66.5%) 독일(56.7%)등 다른 OECD회원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재정파탄상태를 가정해 정부가 대신 물어 줄 성질이 아닌 예금보험공사등의 국가보증채무(80~90조원)까지 빚계산에 넣고, 국민연금 잠재채무 186조원을 국가채무로 어림잡는 등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게 민주당의 공박이다.

가령 한국은행의 IMF차입금은 외환보유고 확충을 위해 한은의 금고속에 고스란히 있는데 이를 어떻게 국가채무로 단순 계산하느냐는 것이다.

민주당은 ‘원조(元祖)책임론’도 제기한다. 우선 97년말 한나라당이 여당시절 국가채무가 65조6,000억원에 달했는데 마치 108조원의 국가채무를 현정부가 만든 것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공격한다.

특히 추가발생한 채무 42조원은 한나라당이 야기한 IMF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실업자 구제등 서민생활을 위해 소요된 자금이라는 것. “한나라당의 실정(失政)을 뒤치다꺼리하다 생긴 빚을 거두절미하고 공격하는 것은 파렴치한 정치공세”라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거짓 주장으로 국민들이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김원길(金元吉)선대위정책위원장은 21일“최근 외국의 정부와 투자업체로부터 ‘정확히 해명하라’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는 등 우려했던 결과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김한길선대위대변인도 “국채규모가 정치쟁점화하면서 외국투자자들이 매우 불안해 하고 있다”면서 “야당은 지금이라도 이성을 되찾고 건전한 정책경쟁으로 되돌아 오라”고 촉구했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한나라당은 국가 부채에 관한 여야 공방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21일 이한구(李漢久)선대위 정책위원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이 문제에 관한 입장을 종합 정리했다.

이위원장은 “우리당이 발표한 내용은 직접 부채 112조원, 지급보증 채무 90조원, 국민연금 관련 등 묵시적 채무 206-226조원 등을 합한 ‘사실상 국가채무’ 408조-428조원이었다”며 “그런데도 민주당은 우리당의 발표 내용이 마치 ‘국가 직접 채무’ 400조원 이상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위원장은 “정부는 지급보증을 국가채무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경제학과 회계학 교과서에도 ‘지급보증=우발채무’로 규정돼 있다”면서 “국회 사무처가 발간한 ‘2000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등을 보더라도 정부 기관 스스로가 지급보증을 국가채무에 포함시켜 발표한 사례가 있다”고 거증했다.

이위원장은 “국민연금 등과 관련한 잠재적 채무 186조원이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국가채무가 아니라는 여당의 주장도 깊은 지식의 결여에서 나온 것”이라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이 발간한 관련자료를 반대 증거로 제시했다.

이위원장은 “정부·여당은 ‘한나라당이 국가채무 규모를 지나치게 부풀려 대외신용도가 떨어지는 등 경제위기를 부추겼다’고 주장하나 이는 덮어씌우기 전략일 뿐”이라며 “오히려 한나라당이 주장하지도 않은 ‘국가 직접채무 428조원’을 퍼뜨리는 민주당과 정부 당국자들이 대외신용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되받았다.

이위원장은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사회보장제도가 강화되거나 남북통일이 실현될 경우 국가부채가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솔직히 고백하라”면서 “정부·여당은 우리당이 작년에 국회에 제출했던 ‘재정적자 감축법’의 통과를 방해했던 일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위원장은 또 “정부는 올해 안에 5조원 이상 재정적자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예산 확정 후 3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 무슨 대단한 정책환경 변화가 있길래 그런 전망을 내놓느냐”고 반문했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국제기준으로 본 국가채무 얼마

국가채무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86년 국제통화기금(IMF)이 만든 기준을 따르고 있다. IMF가 정의하는 국가채무는 정부가 직접 상환의무를 지는 것으로 상환금액이 현 시점에서 확정되어 있는 부채를 뜻한다.

이 기준을 따를 경우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국채(또는 지방채)발행이나 차입을 통해 직접 조달한 채무로 국한된다. 문제는 금융구조조정시 공적자금 투입을 위해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발행한 채권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할 때 발생하는 ‘보증채무’.

그러나 직접적 상환의무가 없고 장래에 예보 등이 갚을 능력을 상실해 정부가 최종 상환책임을 지더라도 현 시점에서는 규모를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이를 우발채무라고 함) 이 부분은 국가채무 범주에서 제외된다.

국민연금의 경우 파산시 정부가 지불책임을 져야 하지만 현 시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지, 발생하더라도 규모를 확정지을 수는 없기 때문에 국가채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은의 통안증권은 기본적으로 국민세금이 아닌 중앙은행 발권력으로 상환되기 때문에 국가채무와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

이같은 기준에 따른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지난해말 현재 중앙정부채무 90조1,308억원, 지방정부채무 18조190억원 등 총 108조1,498억원이다. 국민 1인당 231만원꼴. 보증채무 81조7,520억원은 물론 빠진 수치다.

경제규모, 즉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국가채무비율은 22.3%다. 일본의 GDP대비 국가채무비율은 97.3%, 미국은 56.7%, 프랑스는 66.5%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비율은 69.5%(98년말)로 우리나라와 3배가량 차이가 난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국가채무 전문가는 어떻게 보나

여야간 국가채무 공방을 보는 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공론화는 좋지만 방향이 빗나갔다’는 것이다. 지금 세대의 안락함을 위해 후손들에게 짐을 안겨주는 국가채무 문제가 ‘이슈화’한 것까지는 좋지만 여야 모두 정치공세 차원에서 접근하다 보니 본질이 희석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여야간 논란의 쟁점은 국민연금 지출수요와 보증채무의 국가채무 포함 여부. 전문가들은 일단 국가채무 범위는 정부 통계대로 ‘중앙+지방정부채무’로 정의되는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을 따르는 것이 타당하며 국민연금 지출까지 국가부채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동건(金東建)교수는 “언제 어떤 형태로 얼마나 들지 모를 국민연금 지출수요를 현재의 부채로 상정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국민연금에 대한 경각심과 이를 부채로 계산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증채무’의 경우 부분적으로는 국가채무 개념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영선(高英先)박사는 “부채란 누가 상환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이자부담을 하느냐도 중요하다”며 “금융구조조정에 투입된 64조원(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 채권)의 보증채무는 원금은 아니더라도 이자는 정부예산, 즉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만큼 부분적으로는 국가채무적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중앙 및 지방정부채무’로 규정되고 있는 IMF기준은 86년에 작성된 것. 그러나 이후 북유럽과 멕시코 등 각국이 금융위기를 맞아 공적자금을 대량투입하자 IMF에서도 최근 들어 국가채무 개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주장은 너무 과장됐지만 정부 역시 IMF기준에 얽매여 ‘보증채무’부담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화여대 경제학과 전주성(全周省)교수는 “다른 위기국가 경험으로 볼 때 구조조정에 투입된 보증채무는 일정 손실이 불가피하며 이같은 미수회율은 현 시점에서 어느 정도 추산이 가능하다”며 “미회수 보증채무, 즉 정부가 상환 부담을 지게 될 보증채무는 실질적 국가채무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채무가 108조원이냐(정부·여당), 428조원이냐(한나라당)의 ‘액수공방’에 그칠 뿐 정작 중요한 재정건전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민연금의 경우 머지않아 바닥이 드러나 심각한 파탄이 예상되는데도 여야 모두 정치적 공방에만 매달려 해결책 모색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국민연금이나 보증채무 문제는 국가채무기준에 관계없이 별도로 진지한 토론과 대안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은 여야 서로 국가채무 감축을 얘기하고 있지만 작년 정기국회 때 각계에서 요구했던 재정건전화특별법을 여야 스스로 외면했다는 점을 기억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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