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의 문을 열어 젖히며 대학에 입성한 ‘00 학번’새내기들이 대학 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인터넷의 세례(洗禮)를 받고 디지털 세대의 첨병을 자처하는 이들은 전혀 다른 문화적 성향을 드러내며 새로운 대학문화를 열고있다. 대학가 ‘디지털 00학번’들의 세계를 들여다 본다. 한양대 경영학과 신입생 백성현(白盛鉉·18)군. 고향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부산으로 진학한 단짝친구와 인터넷 화상(畵象) 채팅이나 온라인 게임을 하며 저녁마다 만나기 때문에 동아리에 들거나 새 친구를 사귈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아요”.이전에는 ‘방콕족’이 방에 콕 박혀 할 일 없는 학생들에 대한 비아냥이었지만 PC방이나 자신의 자취방 컴퓨터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새내기들 사이에선 ‘방콕’이 인터넷을 통해 보다 넓은 세상을 만나는 방법이 됐다.
지난달 보낸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330건이라는 서강대 경상학부 강모(19)양은 “휴대폰의 E-메일이나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이용해 수업시간 중에도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며 “핸드폰과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노트북이 새내기들의 재산 목록 1호”라고 말했다.
‘00학번’은 발이 아닌 ‘손으로 뛰는’ 세대다. 보고서 작성을 위한 자료조사도 전산실이나 PC방에서 해결한다.
연세대 인문학부 1학년 박모(19)양은 “대학생이 된 후 첫 과제물 주제인 ‘이탈리아의 15-16세기’에 관한 자료를 찾으러 도서관을 찾았는데 책도 별로 없는데다 서고에서 자료를 찾는 일 자체가 너무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1학년 오정민(吳正珉·19)군도 “검색어를 쳐 넣고 몇 번만 클릭하면 자료가 너무 많이 쏟아져 고민할 정도인데 도서관에서 번거롭게 책 찾고 빌리고 복사할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주된 생활공간 역시 인터넷 상의 사이버세계다. “미팅이요. 그런거 왜 합니까. 채팅하다 번개(인터넷 채팅 중 약속을 정해 만나기)하면 되는데요”. 서울대 전기공학부 1학년 김정혁(金政赫·19)군은 “새내기 중 아무도 선배들처럼 과팅이나 단체미팅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음악도 인터넷에서 음악파일 MP3를 내려받으면 돼 직접 CD를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새학기면 신입생으로 북적대던 과방이나 동아리방도 썰렁하기만 하다. “과방이나 과모임에서 만난 친구나 선배보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이 더 친근”(서울대 경영학과 정은지·鄭恩智·18·여)한데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인터넷에 ‘커뮤니티’를 만들면 될 뿐“(서강대 경영학부 문희찬·19)아니라, “별 일도 없이 선배들과 뭉쳐다니는 것보다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나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더 합리적”(연대 인문계열 3반 이모군·18)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 김인규(金仁圭·33) 연구원은 “현실세계에 접하지 않는 세대는 새로운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마련”이라며 “하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의 관계만 공고해지고 자신만의 세계에만 몰두하다 보면 사회성이 저하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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