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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빛과 그늘] 측우기는 우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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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빛과 그늘] 측우기는 우리 것!

입력
2000.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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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고구려 옛 땅에 대한 우리의 향수 또한 상당하다. 하지만 막상 중국인들이 우리의 측우기(測雨器)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별 반응이 없다.중국의 과학사 책을 보면 한결같이 측우기를 중국인이 처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기상학사’라는 책에는 아예 표지에 측우기 그림까지 디자인해 넣었다. 측우기 사진을 보면 이 측우기가 건륭(乾隆) 경인(庚寅)년 5월에 만든 것이라고 밝혀져 있다.

건륭이란 청나라 고종(高宗·1736-1795 재위)의 연호(年號)이고, 그 시기 경인년이라면 1770년이다. 중국 사람들은 한국 역사를 거의 모른다. 학자들조차 조선시대에 만든 유물이나 기록에 중국 연호가 붙어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중국 학자들은 측우기 사진에 중국 연호가 있는 것을 보고 중국에서 만든 것이라고 간단히 판단해 버린 것이다.

물론 측우기는 조선왕조 4대 임금 세종 때 처음 만들었고, 이후 계속 사용됐음을 조선시대 실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국에는 어느 역사 자료에도 ‘측우기’라는 단어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이 연호 하나를 근거로 측우기를 중국의 발명품이라고 강변하는 데에는 그들 나름의 자존심 문제가 있다.

작년말 마카오를 회복하기까지 몇 세기를 서양의 식민지 상태로 서럽게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과학기술에서 뒤졌던 데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인이 모든 값진 것의 발명국가였음을 천명, 과학기술에 대한 역사적 긍지를 되살리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기술 대국, 나아가서 진정한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것이다. 우리 측우기가 난데없이 그들의 애국심 표출에 한 수단으로 전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중구삭금(衆口削金)이란 말이 있다. “입이 여럿이면 금도 녹인다”는 뜻인데 중국 과학사가 하도 그렇게 쓰다 보니 이제 서양의 학자들도 모두 우리 측우기를 중국의 발명이라 기록하기에 이르고 있다. 우리는 측우기를 중국의 그늘에서 밝은 곳으로 되찾아오지 않으면 안된다. 독도만 우리 땅이 아니다. 측우기도 우리 유산이다.

/박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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