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사/“지난 80년대에는 오랜 침묵을 깨고 우리 교육의 틀과 내용을 바로잡기 위한 교사들의 노력이 힘차게 일어났다. 교육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정치의 탄압과 방해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수많은 교사들이 모여들었다. 학부모들과 학생들도 일어서서 바른 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교육계의 변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인 큰 흐름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교육계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우리 교육’은 이 땅의 교육을, 국민의 교육권을 몇몇 개인이나 일부 집단, 편협한 정치의 지배로부터 지켜내는 교육전문지이자 종합지, 교육정론지를 자임하며 그 창간호를 낸다. ‘우리 교육’은 전국의 각지에서 바른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30만 교사들의 생생한 주장과 진실된 목소리를 담아내 올바른 교육여론을 형성함으로써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갈 것이다.”
영화 ‘여고괴담’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학교’가 많은 관객과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학교 교육 문제가 가볍지 않다는 뜻이겠다. 물론 한국 사회에만 교육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25%에 가까운 문맹률에 골치 아파하고, 미국인들은 미국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아시아 학생들보다 너무 뒤처져 있는 것에 긴장한다.
학급 붕괴의 조짐은 한국에서보다 일본에서 먼저 나타났다. 마약은 인종 집단을 가리지 않고 유럽과 미국의 학생들에게 만연해 있고, 학생들끼리의 또는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폭력은 그 나라들의 학교를 좀먹고 있다. 정부에 압력을 넣어 교육 예산을 늘리기 위해 학생들과 교원 노조가 파업과 시위에 나서는 것도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학교의 서열화도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광범위하고 정교한 통계처리로 보여주고 있듯이, 학교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 기존의 계급 구조를 재생산해내는 부드러운 폭력 기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나 교육 문제가 존재하고 더 나아가 학교 교육 제도가 근원적인 수술을 요구하는 해악이라고 해서, 그것으로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가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학벌 숭배는 가족 이기주의와 결합해서 한국의 학교를 하나의 전쟁터로 만들었다. 대학을 다녔느냐 그러지 못했느냐, 또는 대학을 다녔으면 어느 대학을 다녔느냐가 한 사람의 값어치를 결정하는 데 한국만큼 크게 작용하는 사회가 흔치는 않을 것이다.
‘입시 전쟁’이라는 것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겠지만, 한국에서 그 전쟁의 양태는 특히 참혹하다. 아이들은 학령에 이르기 전부터 여러 군데의 학원을 다니고, 그런 학교 밖의 수업은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간 뒤에야 겨우 잦아든다. 사회의 여러 부문과 마찬가지로, 교사도 부패와 무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월간지 ‘우리 교육’이 솟아오른 자리는 바로 그 뒤틀린 교육 현장이다. ‘초등 우리교육’과 ‘중등 우리교육’으로 나뉘어 나오고 있는 이 잡지는 1990년 3월호로 창간됐다. 이 달로 만 열 살이 된 셈이다. 창간 당시에는 초등과 중등의 구분이 없었다.
초등판과 중등판을 분리해서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3월이다. 전교조에 소속된 해직 교사들이 창간을 주도했지만 처음부터 전교조와 조직적 관계는 없었고, 더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잡지의 기자들이 대개 교육 현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로 충원되고 있다.
그러나 필진으로는 여전히 교사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교육 문제를 가장 절박하게 느낄 사람들이 현장의 교사들일 터이므로 그것은 당연하다. 그러니까 ‘우리 교육’은 교사들이 만드는 잡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잡지의 독자들도 대개 교사들이다. ‘우리 교육’은 교사들에 의한, 교사들을 위한 잡지인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또 다른 주체가 학생이고, 교육 문제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 교육’은 교사들만을 위한 잡지가 아니라 학생을 위한 잡지이기도 하고, 일반 시민들을 위한 잡지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의 ‘우리 교육’의 지면은 단지 그 기간 동안만의 교육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그리고 앞으로의 교육 문제까지를 응축하고 있다. 그것은 교육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또 하루이틀에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겠다.
체벌로 상징되는 학생의 인권 문제에서 시작해 교원노조 운동, 촌지, 학생회, 교과 모임, 수행평가, 멀티미디어 교육, 교실 붕괴, 학교와 지역 사회의 관계 맺기, 학교 운영위원회, 학급 문집, 개성이 묻어나는 교실, 학사력(學事曆)의 문제점, 교과서 문제, 글쓰기 지도, 교과 구분, 생태 교육, 통일 교육, 교육 재정 같은 것이 ‘우리 교육’ 10년을 채우고 있다. 이 세목들은 아마도 10여년 전에 전교조 교사들이 내세운 ‘참교육’이라는 표어의 속살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서양말의 ‘교육한다(educate)’는 말이 어원적으로 뜻하는 ‘(소질이나 잠재력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그 참교육의 한 측면일 것이다. ‘우리교육’은 그렇게 학생들의 소질이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참교사들의 조력자라고 할 수 있다.
고종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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