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 연구회는 1980년대 말 이창호 유창혁 최규병 양재호 등 충암 고교 출신의 젊은 기사들이 모여 결성한 것으로 현재 20대 이하의 신예 기사 대부분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내 최대 바둑 연구모임이다. 그동안 정기적인 공동 연구를 통해 수많은 한국형 신수 신형을 개발해 내는 등 한국 현대 바둑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특히 거의가 고교 동문들이기 때문에 단순한 연구모임 이상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한데 최근 충암 연구회 소속 젊은 프로기사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터놓고 말하는 100쪽 남짓의 회지를 발간, 작은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 회지 발간은 충암 연구회 중에서도 골수분자들이라 할 수 있는 ‘소소회’정기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27세부터 15세까지의 소장 그룹이 주축이 된 것으로 소소회 10년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김만수 목진석 이지현 최문용 등 바둑계의 소문난 재주꾼들이 편집을 맡았는데 약간 거칠기는 하지만 전혀 꾸밈이 없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따라서 완고한 선배 기사들이 보기에는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내용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향기(香棋)’라는 다소 고풍스런 회보 이름과는 달리 회원들의 자작시와 소설, 꽁트, 횡설수설 등 각종 장르의 글솜씨 자랑에서부터 소소회 연수회 참가기, 서평 영화평, 앙케이트 조사, 회원 프로필, 심지어 스타크래프트 필승전략과 전술에 이르기까지 바둑의 ‘바’자는 한 글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흡사 중교교 시절의 교지나 인터넷 채팅 화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평소 쉽게 드러내기 거북했던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털어 놓고 있다. 대부분 어린 나이에 입단하자마자 줄곧 연구실에서 함께 생활해온 이들은 연구실이 곧 삶의 터전이며 소소회가 바로 생활의 구심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실제로 회보를 발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도 소소회가 발족된지 10년이 지나자 회원들이 급증, 회원간의 친밀도가 약해지고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바둑팬의 입장에서는 소소회보를 통해 평소 궁금했던 N세대 기사의 일상생활의 한 단면을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아울러 이들 젊은 ‘바둑기계(機械)’들도 주위의 같은 또래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건강한 청소년들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박영철 /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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