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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도 봉사활동도 닮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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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도 봉사활동도 닮았죠"

입력
2000.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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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좋게 생긴 개그맨 백재현(白在鉉·30)씨는 사람이 좋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다. “어려서부터 불쌍한 동네 아이들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어요.”이렇게 말하는 이는 어머니 안춘월(安春月·58)씨. 두 사람은 모양도, 너른 마음씨도 꼭 닮았다는 모자이다.두 사람은 적십자사의 숨은 봉사원이다. 어머니 안씨는 한달에 두번씩 적십자사 서울지사나 지역모임인 행당1봉사회에 나가 실직자와 노숙자를 위한 급식봉사를 하고 있다. 어머니따라 백씨도 지난해 8월 적십자사 주최로 열린 소년소녀가장들의 제부도 견학에 참여했다.

백씨 모자가 사는 동네는 서울 성동구 행당동 192번지, 고만고만한 다세대 주택들이 이웃한 좁은 골목이다. 여기서 산지 벌써 20년째. 백씨의 집도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1990년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빌딩청소며 공장일을 마다않으며 2남1녀를 키웠다.

그러면서 막내아들인 백씨 때문에 집안에 쌀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백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고픈 동네 꼬마들을 자기집 밥상에 모아놓고 아이들에게 밥 한 숟갈씩 떠먹이고 나서야 마지막 숟가락을 들곤 했다.

길에서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사먹이다가 유괴범으로 몰려 파출소에 끌려갔던 적도 있고 가출한 중 고등학생 아이들과 지내다 인신매매범으로 몰려 부모들에게 ‘죽도록’ 맞은 일도 있다. 1993년에는 고아인 이기문(26)씨를 데려와 4년이나 같이 살았다. 덕분에 이씨는 지금 호주에서 컴퓨터엔지니어로 성공했다.

“한 입 건사하기도 힘든데 군식구까지 데려오나 싶어 야단도 쳤어요. 그래도 우리 재현이가 착한 것이 참 대견하지요”라고 안씨가 말한다. 옆에 있던 백씨는 “어머니가 그때 저한테는 싫은 소리를 하셨지만 기문이 호주가는 비행기표값을 어머니가 대주셨어요. 저보다 더해요”하고 거든다.

안씨가 봉사를 한 계기도 특별하다. “2년전에 빌딩청소를 하다가 머리를 다쳐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이웃 아주머니가 봉사나 나가자고 하더군요.”요즘 잘나가는 아들 덕택에 살림도 폈지만 봉사활동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요즘은 모자간에 봉사관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형편이 된다면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백씨는 ‘돈 몇푼보다는 정말로 아이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자립심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부도에 갔을 때 대부분 아이들이 밥을 조금만 늦게 주면 ‘왜 우리는 밥을 안주냐’며 소리지르는 등 극도로 이기적인 데 놀랐어요”라고 말하는 백씨는 가난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성숙하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백씨는 올해도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행사에는 빠지지 않을 결심이다. 선배 김미화씨가 연결해준 유니세프의‘기아 난민’체험도 꼭 할 작정이다. “봉사란 무한정한 인내심을 필요하기에 인생만큼 어렵습니다”며 백씨는 봉사의 동반자인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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