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약물을 발견하는 것이다. 즉 알코올이나 코카인보다 효과가 크면서 부작용은 별로 없는 대안물이 개발되어야 한다. 내가 만약 백만장자라면 과학자들에게 이상적인 도취제의 발견이라는 과제를 맡길 것이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 정도 고독감을 없애주고, 동료들과 화목한 관계를 맺으며, 모든 면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을 우리가 냄새로 맡고 삼킬 수 있다면.”(‘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취(取)하는 것은 취(醉)하는 것일까.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가지려고 한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담과 이브가 ‘인식의 열매’인 사과를 먹고, 중독되기 시작한 이래 인간은 끊임없이 ‘중독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스스로 ‘인공낙원’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욕구는 끊임없이 취함의 대상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온 것이다.
독일학자 알렉산더 쿠퍼(40)의 ‘신의 독약’은 부제 ‘에덴 동산 이후의 중독과 도취의 문화사’가 설명하듯 인류의 시작이래 계속돼 온 중독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그는 철학자와 예술인들의 중독사(史)를 중심으로 도취의 역사와 내재된 철학적 동기를 짚어내고 있다.
사실 18세기 말까지 약물에 대한 관심은 ‘집착’ 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신비한 종교적 환상을 체험하기 위한 방편이거나 질병 치료를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적정한 기호품 수준의 사교적인 동기로 주로 사용됐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위관리들은 독미나리 비소, 개정향풀과 같은 독극물과 아편을 정기적으로 복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독살에 대비해 면역성을 기르기 위한 필수적인 노력이었다.
16세기는 유럽의 도취 역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다. 16세기는 ‘폭음의 시대’로 명명되는데, 1517년에는 최초로 절주연맹이 구성되기도 했을 정도로 음주에 대한 욕망이 분출했다. 사람들이 더 괴로웠기때문일까? 이유는 증류 방법이 발달했기 때문. 10세기 동양에서 생겨난 증류방법은 15세기 말까지는 의학적인 목적을 위해 수도원의 약제실에서나 행해졌었다. 그러나 중세의학에 알코올이 주요한 치료제로 등장하면서 브랜디는 ‘생명의 물’이라는 칭송을 얻게됐다. 이렇게 형성된 수요와 증류법의 보편화에 따른 공급이 맞아 떨어지면서 폭음의 시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전쟁은 ‘도취’의 전령사 중의 하나다. 유럽의 크림전쟁과 독불전쟁,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아편이 진통제로 남용되면서 병사들은 전쟁터에서 중독자가 되어 돌아왔다. 남북전쟁후 아편 중독자는 40만명으로 추산됐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1%에 해당한다.
산업혁명으로 고단한 일상을 보낸 노동자들은 또 아편을 이용했다. 고단한 부모들은 아이들을 ‘얌전히 있도록’ 하기 위해 아편 ‘로더넘’을 섞은 ‘고드프리 강장제’라는 음료를 먹였다. 아편 캔디, 아편 포도주, 아편 식초 등 생활 속에는 아편이 넘쳐났다.
마약을 통한 쾌락을 얻는 것이 냉혹한 체제에 맞서기 위한 일종의 철학적 행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부터다. 계몽주의나 합리주의의 냉혹함에 대한 불만족에서 시작한 아편에 대한 선호와 그에 따른 정신적 만족감은 호프먼, 루드비히 티크, 장 폴 같은 독일 작가들의 ‘판타지 문학’을 통해 분출했다.
음험한 환상으로 가득찬 현실 저편에는 미지의 의식세계가 있으며, 약물에 의지해 그 환상의 세계를 느껴보려 했던 것이다. 랭보, 코울리지, 노발리스, 애드거 앨런 포, 랄프 왈도 에머슨 등의 작가들은 꿈과 일상이 혼재된 무의식적 세계에서 몽상의 일가를 이룬 작가들. 이런 의식은 객관성의 상실을 통해 주체의 새로운 속성을 발견하려는 모더니즘의 철학적 기반이 됐다.
20세기에 접어 들면서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디즘이 시작되자 약물에 대한 집학은 더욱 커졌다. 장 콕토, 반 고흐, 모딜리아니에서 윌리엄 포크너, 헤밍웨이에 이르기까지 술꾼 작가들, ‘비트 제너레이션’에 속하는 버로스, 케루악부터 비틀스, 핑크 플로이드, 도어스 등 팝 그룹은 LSD와 마리화나의 세례를 통해 새로운 예술을 시도했다.
그러나 술과 마약을 생산해 내는 것이 인류이듯 그것에 대한 억압 수단을 만들어 내 온 것도 인간이었다. 독일은 1920년 아편금지법을 제정하고, 1968년 알콜중독을 법적 질병으로 판정했다. 미국은 술에 관해 특히 이중적이다.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정착 직후 양조업을 시작했다. 매사추세츠주에서는 한때 상습 음주자들을 말뚝에 묶고 ‘D(Drunkard)’자를 써붙여 두기도 했다. 1826년 금주협회가 창설됐고, 1919년 공화당 의원의 이름을 딴 ‘볼스테드 금주법’이 발효됐다. 술로 인한 패가망신을 고발한 ‘금주문학’이 나온 것도 미국. 그러나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테네시 윌리엄스, 유진 오닐 같은 위대한 작가들이 바로 이 시기에 나왔다. 물론 그들의 작가 생명을 짧게 만든 것 역시 술이었다. 인간은 술과 마약에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탐닉과 금지’라는 또 다른 이율배반에 중독된 것인지도 모른다. 박민주 옮김. 1·2권 각 1만 5,000원.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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