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62) 문학과지성사 대표가 18일 퇴임식을 갖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970년대 이후 한국 지성계의 한 흐름을 만든 계간 ‘문학과 지성’창간, 출판사 대표로, 또 현장의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온 그의 퇴임은 여러모로 하나의 ‘매듭’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그를 만나 개인적 소회와 우리 문학·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30년 문학·출판활동에서 물러나는 감회는.
1970년에 ‘문학과 지성’을 창간하고 1975년에 출판사를 만들었습니다. 30년이라면 반평생인데 사실 한평생이지요. 내 생활이 ‘문지’로 이루어졌고 지적인 사유·정서도, 나의 대외적 표현도 문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간 출판사에서 만든 책이 1,156종, 권수로는 870~880만부가 되더군요. 하지만 내가 물러난다고 해서 문지를 함께 해온 다른 이들이 물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문지가 오래 전부터 세대교체를 대비해온 결과일뿐입니다. 그간의 30년은 정치적으로는 유신과 신군부, 문민정부를 겪었고 이념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진보주의, 1990년 이후의 해체주의까지 급격한 변동을 겪어왔습니다. 문지는 그 과정에서 1970년대에는 불온한 지식인 집단으로, 1980년대에는 보수주의자로, 1990년대에는 권위주의로 비판받기도 했지요. 하지만 문지는 현실적 이념적 문화적 급변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지식사회와 독자의 신뢰 속에서 나름대로 대응해왔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 지성사회에서 문학의 역할도 많이 변했지요.
억압된 현실에서 그것을 관찰, 폭로하고 변혁의 의지를 심어주는 것은 문학에서만 가능했습니다. 나 자신 소극적 관망자의 입장이었을지 모르나 문학이 현실적 금기를 파괴하며 타 예술과 학문을 자극하고, 또 그것이 현실을 자극했습니다. 지난 30년동안 한국사회가 가장 큰 빚을 진 분야가 바로 문학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나라 지성사보다도 큰 비중을 갖고 있고, 이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 하지만 이제 문학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우선 문자세대에서 영상세대로, 크게 문화체계가 옮겨가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다극화·다원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문학으로 수렴되던 힘들이 영화, 컴퓨터, 과학, 기타 엔터테인먼트로 분산되고 있습니다. 세번째로는 1970-80년대 너무 컸던 문학의 영향력에 대한 반작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거대담론에 한계를 느낀 미시권력에 대한 욕망이 표출된 것이지요. 문학은 이런 상황에서 문화상품화하고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전 시대의 문학이 성인 다음으로 영예로운 자리에 있었다면 이제 작가의 위신은 스토리제공자 정도에 만족해야 하지요.
- 그렇다면 문학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가지 움직임이 있습니다. 우선 언더그라운더로서의 글쓰기지요. 문학의 체통을 지키면서 귀있고 눈있는 사람만 읽으라는 식으로 어려운 문학을 하는 겁니다. 두번째는 순수한 읽을거리로 남는 겁니다. 추리물이나 스릴러, 에로소설 등이 그 예이지요. 이제 예술의 모든 재료, 형태가 ‘E-’의 물결에 전부 바뀌고 있습니다. 못마땅하고 안타깝더라도 역사적으로 문학이 근대의 산물이듯, 구시대의 예술이 될 것입니다. 다만 변화를 숙고하면서 어떻게 전래의 예술을 새로운 매체와 결합할 수 있을 것인가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 퇴임 후에는 어떻게 지내실 생각입니까.
당분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해방감을 누리고 싶습니다. 가끔씩은 출판사에 들러 친구들과 바둑이나 두면서 말이지요.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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