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主夫 오성근씨경기 과천시 원문동 오성근(吳成根·35)씨의 손은 물마를 시간이 없다. 하나뿐인 딸 다향(茶香)이의 기저귀를 갈고, 젓병을 소독하고, 우유를 타고, 간식 만들어 먹이고, 목욕을 시키면서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7동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부인 이정희(李姃喜·30)씨가 생계를 맡는 대신 오씨는 육아를 위해 직업까지 포기했다. 그런 그를 ‘극성 아빠’라고 하지만 오씨는 개의치 않는다. 오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과천지역 미취학 아동과 부모들로 ‘함께 노는 아이들’이란 모임을 결성, 본격적인 육아 프로그램을 마련중이다.
오씨가 육아에 나선 것은 스스로 그걸 원했고 상황도 그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처는 아이가 태어나도 직장을 다니고 싶다더군요. 아이를 맡아 키워줄 사람도 마땅치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아이를 키우고 싶었고요.”
그래서 지난해 3월 한의원 사무장 일을 그만두었다. 아이는 4월에 태어났고 그때부터 오씨의 육아는 시작됐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작년 여름에는 아이가 설사를 해 하루에 열한번이나 기저귀를 갈고 따뜻한 물로 씻어주었다. “더운 여름날 종일 뜨거운 물을 만졌더니 열기에 질리더군요. 이럴 바엔 직장에 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다향이가 ‘엄마’ 소리보다 ‘아빠’ 소리를 먼저했을 때, 엄마가 옆에 있어도 아빠를 찾을 때 오씨는 부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으쓱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서 오씨는 “아이가 하는대로 두자”는 육아원칙을 확고히 하게 됐다.
지난해 11월 인근 주부들과 만든 ‘함께 노는 아이들’이란 모임도 그런 원칙을 지키고 있다. 모임은 지역 신문과 환경단체가 주최한 ‘쓰레기 반으로 줄이기’수기 공모에서 오씨가 1등을 차지한 뒤, 대낮에 아이를 안고 다니던 남자가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아주머니 3명이 찾아옴으로써 만들어졌다. 현재 미취학 영·유아 14명, 엄마 9명 그리고 오씨가 회원이다. 회원들은 매주 수요일 문원동 마을회관에 모인다. 아이들은 모이면 그저 열심히 놀기만 한다. 그 시간, 부모들은 어떻게하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않을까, 아이가 아플 땐 어떻게 하나 등을 의논하고 경험을 나눈다.
2일에는 모임 명의로 5평 크기의 조그만 주말농장을 마련했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채소를 가꾸면서 자연과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날이 풀리면 함께 개구리도 보러가고 가족 모임도 활성화, 남편들(오씨네는 부인)끼리도 어울리도록 할 계획이다.
오씨는 당분간 아이 기르기를 계속할 생각이다. 최근 마당극 단체와 방과후 글짓기 교실에서 일을 함께 하자는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한 것도 아직은 아이곁에 부모가 늘 함께 있어야하는 시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씨는 민족문학작가회의 글쓰기 강좌를 듣고 지역의 여러 문화·환경단체에 가입해있을 정도로 글쓰기와 문화에 관심이 많고 부인도 1992년 민족문학작가회의 강좌를 함께 듣다 만났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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