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신부-양승규교수함세웅(咸世雄)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65년 가톨릭신학대를 졸업하고 68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73년 로마 그레고리안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74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창설에 참여했고 76년 명동3·1사건으로 구속됐다. 88년 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에 부임했다. 현재 상도동성당 주임신부,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양승규(梁承圭) 1934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60년 서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75년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68∼99년 서울대 법학과 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가톨릭대 법학과 대우 교수로 활동중이다. 현재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2일 사순주간을 맞으며 십자군전쟁, 마녀사냥 등 가톨릭의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다. 교황의 참회는, 1000년전의 과오에서도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역사의 무거움을 모든 이들에게 생각케 했다. 또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나쁘지만 그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오히려 아름답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사회정의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온 사제와 성서의 가르침을 실천해 온 법학자가 반성과 참회없이 살아온 우리 사회를 돌아보았다.
_ 교황이 교회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함세웅 = 용서를 비는 것은 종교의 바탕이에요. 가톨릭의 미사가 지난 1주일을 반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도 그 때문이죠. 교황이 과거사에 대해 용서를 빈 것은 그런 가톨릭 정신을 실천한 것입니다. 용서를 구함으로써 하느님과도 화해하고, 가톨릭으로부터 피해를 본 이웃과도 화해할 수 있게 됐거든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교회가 침묵한 것 등은 명시적으로 사죄하지 않았어요. 이왕 할 거라면 보다 분명하게 하는 게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톨릭이 중앙집권적이고 독선적이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번에 그런 부분을 고쳐나가겠다는 약속도 함께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하지만 이 정도의 참회에도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양승규 = 원래 예수는 인간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 잘못을 뉘우치면 언제든 용서해 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겉으로는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잘못은 감추려고만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번 일을 종교적 행사로만 보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토록 오랜 일을 참회하는 것을 보면서 역사의 무거움이랄까, 그런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거든요.
함세웅 = 그래요. 1,000년이 지나든 만년이 지나든 과오는 과오로서 역사에 기록됩니다. 잘못된 역사라고 해서 마냥 덮어만두고 입에 올리기를 꺼려한다면 누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양승규 = 비록 역사가 한 순간 일탈하고, 그것이 그때는 올바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역사는 언젠가는 진실을 얘기합니다. 잘못된 역사를 호도한다면 그 잘못이 부메랑이 돼 우리에게, 우리 후손들에게 다시 날아오지 않겠습니까. 교황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한 것은 그같은 잘못을 더 이상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이 들어있습니다.
함세웅 = 우리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네요. 불과 몇 년, 몇 십년전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저질러 놓고도 최소한의 참회도 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또 반성하지 않는 그들에게 붙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납니다. 이들 때문에 우리가 역사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말이 나도는 것 아니겠습니까.
양승규 = 그렇죠. 저는 몇 년전 독일에 간 적이 있었어요. 버스를 기다리다 정류장 옆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우연히 갔는데 나치가 유대인을 집단 학살하는 등 독일의 부끄러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어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가까이서 되돌아 보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역사적 진실을 항상 기억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전시회를 본 순간 우리의 현대사가 오버랩되더군요.
_ 우리 현대사 어떤 부분이었습니까.
양승규 = 해방 이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게 먼저 떠오르더군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른 그들이 정권과 붙어 호위호식했지 않습니까. 그 후손들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죠. 그러니 역사의 정의가 살겠습니까. 더구나 그들 대부분은 한번도 용서를 빌지 않았어요. 수백년 전 일까지도 반성하는 교황청과 비교됩니다. 지금이라도 이들의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할 겁니다.
함세웅 = 그건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죠. 가톨릭은 모진 박해를 받고 들어왔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安重根)의사를 정신적으로 짓밟은 게 대표적입니다.
양승규 = 안의사는 가톨릭 신자였는데 당시 조선교구장이던 뮈텔주교는 “가톨릭 신자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 “안중근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라고 했거든요. 같은 프랑스인인 홍석구(프랑스 이름 요셉 빌헴) 신부가 안의사를 면회하자 그에게는 성무집행정지라는 처분을 내렸어요.
함세웅 = 3·1운동때는 만세운동에 참가한 신학교 학생들을 무더기로 학교에서 쫓아냈습니다. 일본 천황을 위해 기도하고 학병 출병을 권고하기도 했어요. 반공 이데올로기를 옹호했고 박정희(朴正熙)의 인권 탄압에도 눈을 감았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이 학살될 때도 광주지역을 빼고는 대체로 침묵했어요. 망국병이 돼버린 지역감정이 가톨릭에서 시작됐다는 것도 부끄러운 사실입니다. 공화당 박정희후보와 민정당 윤보선(尹潽善)후보가 붙은 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때 “이번에 신라의 자랑스런 후예인 박정희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자”며 지역감정을 퍼뜨린 바로 그 사람이 대구 가톨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신자였거든요. 하지만 우리 가톨릭은 이런 행위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을 한번도 하지 않았어요.
_ 우리 사회가 과거를 너무 쉽게 잊고 잘못에 너무 관대하기 때문 아닐까요.
양승규 = 국민들이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사람이 지금도 많아요.
함세웅 = 교황청의 참회에는 방어적인 측면도 있어요. 유럽인들이 교황청이 참회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거든요. 심하게 말하면 반성을 해야 교회에 득이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런 점에서 잘못된 역사를 참회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 사회의 풍토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치든 종교든 그 사회의 현재적 수준과 일치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게만 본다면 모두 다 잘못했다는 식의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같은 잘못이라도 정말 누구에게 책임이 있겠습니까. 결국 지도층, 교회 지도자에게 더 큰 책임이 있지 않겠습니까.
양승규 = 맞아요. 지도층이 더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언론에도 반성을 촉구하고 싶어요. 인권이 유린되고 강권정치가 판을 치던 그때 우리 언론이 무엇을 했나 묻고 싶어요. 언론이 교황청의 참회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언론도 참회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_ 우리가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양승규 = 우리가 믿는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린 바로 그 분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는 우리에게 겸손과 낮춤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현실의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합니다. 처참하게 죽은 예수를 생각하고 닮으려 한다면 과오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함세웅 = 십자가의 예수는 완전히 발가벗겨진 상태였어요. 하지만 우리 교회는 권력과 돈, 힘 등 너무나 많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예수의 본 모습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요. 예수는 또 성전 안이 있지 않고 세상 속에 있었습니다. 교회가 성전에 안주하지 않고 남과 북이 갈라진 이 땅의 현실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도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승규 = 신부님께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참여하고 사회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것도 결국 그런 생각때문이었지요.
함세웅 = 73년 연희동 성당에 있을 때 유신정권에 의해 투옥된 사람의 가족들을 많이 만나고 지학순(池學淳) 주교의 구속을 지켜보면서 사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사회적 정화와 개인적 구원이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죠.
양승규 = 저는 이번 4·13 총선이 신부님이 말씀하신 사회적 정화와 개인적 구원의 시험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후보를 뽑으면 사회도 좋아지고 개인도 살기 좋아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아무런 참회를 하지 않고, 그것도 모자라 또 다시 지역감정과 색깔론을 이용하려는 후보자의 모습을 보면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따지고보면 그게 다 화합이니 뭐니해서, 과오를 저지른 인사를 너무 쉽게 감싸안으려했기 때문 아닐까요. 교황청의 참회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라면, 우리 유권자는 총선에서 과거처럼 각종 연고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진행·정리=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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