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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칼럼] 0.003%대99.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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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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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에 ‘최소량의 법칙(law of minimum)’이란 게 있다. 식물이 함유하고 있는 원소나 양분 중에서 가장 소량으로 존재하는 것이 식물의 생육을 결정적으로 지배한다는 법칙으로, 독일의 J.F.리비히가 제창했다.이 법칙은 오늘날 동식물의 생육은 물론 사회변화의 동인(動因)을 설명하는 데도 자주 인용되고 있는데, 역사나 사회의 변화는 무슨 거창하고 웅대한 것이 아닌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 계기가 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정치인을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집행하는 데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적 인사라고 보고 이 범주에 속하는 인물을 꼽아보자.

국가정책 결정과 입법활동을 주임무로 하는 국회의원 299명(16대 국회에서는 273명), 소속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지원·자문해주고 당의 노선 결정에 힘을 발휘하는 정당의 고위간부들, 원외에 있으면서도 적지 않은 정치영향력을 행사하는 전직대통령이나 전직총리 등 전직 고위인사들과 정치에 입김을 넣을 수 있는 각계 인사 등을 포함해 정치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구군(群)은 500여명을 넘기 어렵다.

여기에 이번 선거후보로 나선 정치지망자 1,000여명을 합쳐도 1,500여명에 불과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99년말 현재 우리 나라 총인구는 4,754만명. 정치지망자를 포함해 이른바 정치인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집단은 어림잡아 총인구의 10만분의 3 정도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중 선거에서 떨어져 제 갈 길로 돌아갈 정치지망자를 제외하면 그 비중은 10만분의 1로 줄어든다.

총인구의 10만 분의 3에 불과한 정치인이라는 집단이 지금 온 나라를 뒤집어 놓고 있다. 0.003%의 소수집단에 99.997%의 국민들이 농락당하고 있는 꼴이다. 0.003%의 소수집단은 여야 불문하고 권력욕에 사로잡혀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외면하고 추악한 선거판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책임진 정치인으로서의 최소한의 덕목과 금기를 내팽개치고 선거판을 패악의 전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국민들은 국가경영에 ‘최소량의 법칙’이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음을 선거판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 법칙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지혜와 덕을 갖춘 인물이 아니라 어리석음과 욕심으로 뭉쳐진 인물이라는 데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나라를 버리지 않은 것같다. 패악덩어리의 정치밭을 갈아엎겠다는 양심적인 시민이 있고 파멸로 내닫고 있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으려는 용감한 시민이 있다는 것은 천운(天運)이 아닐 수 없다.

총선시민연대,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이 생업에 바쁜 국민을 대신해 벌이고 있는 각종 선거개혁운동은 성전(聖戰)이다. 이들은 옥죄는 기존 법망 속에서 위법논란, 음모론, 유착설 등의 모함과 위험을 무릅쓰고 역사를 거스르는 정치인과 선거판을 감시·고발하고 국민들에게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제발 이번만은 사람을 제대로 뽑자고.

국민이 할 일은 거창하고 웅대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민주정치의 씨앗을 뿌리겠다고 나선 시민단체에 힘과 용기를 실어주고 그 뜻을 실천하면 된다. 우선 이번 총선거가 정치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 냉소주의를 떨쳐야 한다.

그리고 저질 정치인의 지역주의 선동에 속지 말고, 정치인들에게 손을 벌리지도 말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할 사람을 가려내 투표권을 행사하면 된다. 모처럼의 시민혁명이 유권자혁명, 선거혁명, 정치혁명으로 꽃 피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갖자. 유권자 개개인의 작은 힘으로 위대한 역사를 일궈냄으로써 아름다운 ‘최소량의 법칙’을 입증해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편집국 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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