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열풍에 대학이 흔들린다.학업을 내팽개친 채 헛된 ‘대박’의 꿈을 좇는 휴학생이 전례없이 급증, 일부 대학 강의실에선 공동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 관련학과를 포함한 이공대학은 심한 경우 휴학생이 절반에 육박하는가 하면 인문·사회계통 학생들도 뒤질세라 ‘휴학러시’에 가세하고 있다.
연세대 공대 3학년 정모(22)씨는 이번 학기 벤처 취업을 위해 휴학계를 던졌다. 아직 정식 월급은 못받는 처지지만 벤처에서 일할 기회를 잡았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한다. “학교에서 좋은 학점받으려고 노력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벤처업체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병역특례도 노릴 수 있잖아요.”
지난달 휴학한 Y대 인문대생 유모(25)씨도 최근 벤처인큐베이팅 전문회사에 들어갔다. 전공과 무관하고 하는 일도 주로 허드렛일이지만 기업컨설팅 전문가가 되겠다는 일념에 취업을 결심했다.
지난 연말 휴학계를 내고 인터넷관련 벤처기업에 취업한 한모(23·S대 전자공 2년)씨는 “실패할 경우 ‘최후의 보루’로 학생신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프로그래머로서 비전이 확실해지면 아예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요 대학의 최근 휴학률은 심각하다.
고려대 공대의 경우 휴학률이 1998년 2학기 18%에서 지난해 2학기에는 42%로 급증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 1학기에는 절반 이상이 휴학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들린다.
서울대도 휴학생(군휴학 제외)이 지난해 1학기 1,002명에서 2학기 2,069명으로 2배 증가했다. 현재 휴학생은 855명으로 5월까지 2,000명이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공대는 현재 369명이나 휴학중이며 일부 학과는 40명이 무더기로 휴학, 벤처업계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혼자 휴학하는 것이 아니라 뜻이 맞고 아이디어에 가능성이 엿보이는 친구들을 끌어모아 집단으로 휴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말 휴학계를 낸 서울대 공대 1년 김모(20)씨는 부모와 친구들로부터 끌어모은 돈 5,000만원으로 친구 3-4명과 함께 청소년 대상 포털사이트를 창업했다. 공부보다는 창업을 하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
연세대 벤처동아리 회원이었던 김모(22)씨는 지난 학기 함께 휴학한 친구 5명과 함께 서울시내 ‘합숙소’에서 숙식을 하며 소프트웨어 개발 벤처 창업을 준비중이다. 또 이번 학기에 동기생 4명과 함께 휴학한 뒤 벤처 창업을 준비중인 고려대 공대 송모(24)씨는 “‘큰일’을 낼만한 아이디어가 있는 친구들과 공동으로 휴학계를 내고 벤처업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아탑의 벤처 휴학 러시에 대해 대학 당국과 교수들은 한결같이 “현재 캠퍼스를 휩쓸고 있는 벤처바람에는 일종의 사행심리가 수반돼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면서 “자칫 학문풍토가 왜곡되고 ‘기본기’ 없는 학생들이 양산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고려대 컴퓨터학과 김창헌 교수는 “최근 벤처로 향하는 휴학생들은 학문적·기술적 기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무작정 시류에 편승해 허상을 좇는 것은 아닌지 냉정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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