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나 연고보다는 사람을 보고 찍고 싶은데, 솔직히 지금 나온 후보들은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니냐.”춘천 의암댐 주변에서 카페를 경영하고 있는 이해일(41·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씨는 이번 총선에서 누구를 찍겠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씨는 이어 “그동안 여당세가 강했는데, 이번에는 여야가 뒤바뀌는 바람에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씨의 한마디에서 수도권과 더불어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강원 표심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접경지역이라는 특수성과 지연·혈연·학연을 중시하는 보수성 때문에 여당 강세라는 꼬리표를 달아온 이 지역에서도 변화욕구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징후가 엿보인다.
홍천에서 만난 시장 상인 장우성(55·홍천군 홍천읍 연봉1리)씨는 후보들을 향해 따끔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악수하고 막걸리 마시면 표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예전 선거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내 고장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라도 깨끗하고 실력은 있어야 한다.” 대학생 이지선(·24·여·춘천시 퇴계동)씨도 “무조건 내 고장을 발전시키겠다고 장담을 하는 사람보다 새 정치를 펴나갈 수 있는 개혁적 비전을 가진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춘천에 있는 한림대 정외과 김용호 교수는 변화하는 강원 민심에 대해 “어느 한 당으로 지지가 쏠리지 않는데다 정권교체, 13개에서 9개로 축소된 지역구 통폐합, 당적을 바꾼 후보들의 출마 등 변수가 워낙 많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개속”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김교수도 “분명한 것은 전통적인 선택의 기준보다는 사람 됨됨이를 따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당 후보가 다소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민주당이 맹추격을 벌이고 있어 선거전 막판에 가서나 수도권처럼 1,000~2,000표의 박빙의 차이로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15대때 강원지역은 총 13석중 여당인 신한국당이 9석, 야당인 국민회의는 단 한석도 차지하지 못했고 자민련과 민주당이 각각 2석씩 얻었다.
한나라당이 안보 및 대북정책에 민감한 지역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햇볕정책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비판공세를 펴고 있지만, 정작 바닥 민심이 동요하지 않는 것도 변화의 조짐이다.
강릉에서 만난 어민 장광식(35·강릉시 강문동)씨는 “문을 닫아놓고만 있으면 북한이 변할 수 있느냐”면서 “우리가 먼저 도와주다보면 방법도 나오고 그런거지”라고 햇볕정책을 편들었다.
영남이나 호남처럼 지역색이 강하지 않아 각 당의 집중공략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주민들은 이 지역을 대표할 만한 간판급 중진정치인이 없다는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속초에서 만난 관광버스 운전기사 이원태(57)씨는 “젊은 사람들은 뽑아줘봤자 대관령만 넘어가면 모른체 하거나 당에 가서도 힘도 못쓴다”면서 “3선은 되어야 나름대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밀어주고 싶어도 밀어줄만한 ‘재목’이 없다”며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실제로 강릉 여기저기에서는 민국당 조 순 대표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고 민주당 최각규(강릉) 민국당 한승수(·춘천)후보 등을 지지하는 주민들도 지지이유는 비슷했다.
춘천·강릉=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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