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거기 병택이네 집이죠? 나 손 선생님이야.”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을 맡으셨던 손금진선생님이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내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셨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1991년, 손선생님의 반에 배정을 받았으니 선생님과의 인연도 벌써 10년이 다되어 간다.손 선생님은 언제나 다정하고 밝으신 분이었다. 특히 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때 들은 이야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 사형수 이야기부터 예전에 가르치신 제자 이야기까지. 수업보다는 선생님의 얘기에 더 귀를 기울이던 일이 생각난다.
선생님에 대한 추억 한 가지. 수업시간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뒤에 앉은 아이가 내 옷을 가위로 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화가 나 그애에게 막 따졌더니 그 아이는“그럼 내 옷도 자르면 되잖아”하면서 자기 옷을 찢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고는 우리를 호되게 야단치셨다. 난 억울했지만 말 한마디 못하고 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그 날 방과후 목이 아파 양호실에 갔는데 그때 문 앞을 지나시던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아까 선생님한테 맞아서 아픈 거니? 넌 잘못이 없었다며? 왜 말 안했어? 정말 미안하구나.” 눈물이 핑 돌았다. 맞은 것이 억울해서가 아니라 따뜻한 선생님의 말 한 마디가 고마워서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손 선생님과의 만남은 전화와 편지로 계속 이어졌다. 난 가끔 그분께 편지를 썼고, 선생님께서도 답장을 보내 주셨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답장은 오지 않았고 나도 선생님의 주소를 잊어버려 더 이상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나의 진로, 선생님의 건강, 그리고 옛날 선생님의 제자 이야기까지.
요즘 진정한 제자와 스승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교실 붕괴나 촌지문제니…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나와는 상관없게 느껴진다. 내가 상 받았을 때 나보다 더 기뻐해 주시고, 우리집의 사정이 안 좋았을 때 나보다 더 걱정해 주시던 선생님이 계시므로! 난 언제나 어린 제자의 마음으로 외쳐본다.“손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수많은 제자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제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스승입니다. 선생님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서울 면목고 3·공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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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2000/03/1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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