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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아들아, 이 애비는 부끄럽지 않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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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 "아들아, 이 애비는 부끄럽지 않단다"

입력
2000.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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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둑어둑한 새벽4시께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이 혹시 깨지나 않을 지 조마조마하면서 옷을 갈아 입는다. 하나뿐인 아들은 학교 도서관에서 새벽2시까지 공부하다 3시께야 돌아와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학원은 기본이고 돈 좀 있다면 아예 선생님을 집에 모셔 특별수업을 받지만 내 아들은 도서관에서만 공부한다. 그런데도 학교 성적은 상위권이다.물에 얼굴을 축인 뒤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아들이 깬 뒤 먹도록 상을 차리고나서 부랴부랴 작업장으로 향한다. 아내는 쥐꼬리만한 월급에다 쓰레기 냄새나는 미화원이 싫다며 2년전 훌쩍 떠난 뒤 소식이 없다.

한때 나는 아내의 환심을 사기위해 그 고약한 쓰레기 냄새만은 꼭 없애겠다며 매일 목욕탕에서 피부가 벗겨지도록 몸을 밀었다. 하지만 옷에 밴 냄새만은 쉽게 털어버릴 수 없었다.

아내가 나간 후 다른 직장으로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나같이 특별한 기술없는 사람을 선뜻 받아줄 곳이 없는데다 요즘같이 실직자가 많은 때는 직장을 구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직장을 쉬고 술로 나날을 보내는 폐인생활을 했으나 아들을 생각해서 다시 이 생활을 시작했다.

주위가 컴컴한데도 사무실 앞에는 이미 동료들이 모여있었다. 작업 도구를 받고 간단한 지시를 받은 후 청소차에 몸을 싣고 담당 구역으로 갔다. 이때부터는 전쟁이다. 좁은 길옆에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부지런히 실어야한다. 조금만 늦으면 길 옆의 차량들이 출근 길에 나서기때문에 청소차는 움직일 수 없다. 빨리 빨리 뛰면서 쓰레기를 치우다보면 추운 겨울에도 땀이 흐른다.

오전 10시면 벌써 시장기가 돈다. 10시30분께 식당에서 새참 겸 점심식사를 하고나면 재활용품 수거에 나서야한다.

이런 생활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된다. 말이 좋아 미화원이지 전에는 가장 하기 싫어하는 업종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누군가 해야하고, 내가 깨끗하고 살기좋은 마을을 가꾸는 데 일조한다는 자부심으로 계속하고 있다. 나같은 미화원도 어깨를 펴고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세상이 어서 왔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조성헌 경기 안산시 본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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