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와 삼성, 재계의 양대 공룡이 자존심을 걸고 또다시 붙었다.무대는 재건축 예정인 서울 강남의 개포동 주공1단지. 두 재벌의 규모에 비하면 싸움 장소가 협소하지만, 대결 양상은 비방전을 넘어서 법정공방으로 까지 비화됐다.
발단은 4단지 수주에 실패한 삼성물산 주택부문이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구성한 컨소시엄을 간접 비난하는 비디오 테이프를 돌리면서 시작됐다. 이 테이프는 20여분 분량으로 현대를 지칭하는 ‘근대건설’의 입주자와 삼성아파트 주민의 법정공방을 통해 삼성을 선전하는 내용이다.
현대측은 테이프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7일 영상물 제작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서울지법에 제출했고 9일에는 서울지검에 삼성측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테이프는 특정업체를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니고 배포 대상도 1단지가 아닌 4단지 주민이어서 현대측 주장은 의미가 없다”며 맞대응을 피했다.
하지만 시공자 선정일인 18일이 가까와지자 혼탁상은 극에 달했다. 현대측도 주민들에게 삼성을 비난하는 홍보인쇄물을 돌린 것. 삼성은 13일 이 홍보물에 대해 배포금지가처분 신청을 서울지법에 냈고 다음날 현대컨소시엄을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 혐의로 서울지검에 맞고소했다.
현대측은 “삼성이 비난전을 먼저 시작했고 홍보물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업체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1억원대의 무이자이주비 공세에 즐거워하던 주민들도 동요하고 있다. 1단지의 한 조합원은 “업체들의 소송 비용까지 결국 추가부담금 등으로 우리가 부담하는 것 아니냐”며 양사의 자제를 요구했다.
개포 주공1단지는 총 5,040가구(5층 아파트)로 재건축을 통해 7,700여 가구의 대단지로 바뀔 예정인 건설업계의 최대 관심지역. 재건축이어서 토지 구입을 위한 업체들의 부담이 없어 지난 1996년 주민들의 조합원 구성 결의때부터 ‘노른자위 땅’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또 개포지구를 수주할 경우 상반기 중 시공사가 선정될 반포 2·3단지와 강동 시영1·2단지 등 10조원 규모의 서울 재건축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다질 수 있다는 점도 치열한 경쟁의 한 요인이다.
배성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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