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시설 '너싱홈'10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2층 양옥. 대지 80여평 건평 50여평, 마당에 잔디가 곱게 깔린 이 집은 겉보기에 여느 가정집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맞이하는 사람은 부모자녀가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거실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훨체어를 나란히 타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안방에선 또 다른 할머니가 침대에 누워 간병인의 간호를 받고 있다. 노인들의 표정에는 일반 가정집에 있는 듯한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새로운 형태의 노인요양시설로 주목받고있는 ‘은성 너싱홈(Nursing home)’이다.
너싱홈이란 거동이 불편하거나 중풍, 치매 등에 시달리는 노인들을 돌봐주는 병원과 가정 중간 형태의 요양시설. 경로효친 사상이 뿌리깊은 우리 사회는 그동안 노인은 당연히 자식이 돌보아야 한다고 여겨왔지만 최근들어 노인들도 집이 아닌 전문시설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인정해가는 추세다. 하지만 이같은 의식의 변화에 비해 일반인들이 이용할만한 요양시설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유료 요양원은 전국에 3곳 뿐인데다 이용료가 만만치않고, 무료·실비(實費) 요양원은 생활보호대상자와 저소득층에게만 자격이 주어진다.
은성 너싱홈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 이용료 100만원으로 비용도 비교적 적당하고, 일반 주거지에 자리잡고 있어 손쉽게 들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노인을 둔 가정으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6개월전 이 곳에 들어온 황씨(81) 할머니의 며느리 김영자씨(가명·63·여)는 너싱홈 예찬론자. 그간 시어머니 봉양으로 정작 자신은 노인 대접을 받지 못했던 김씨는 그동안 남편과 함께 요양시설을 물색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 고민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너싱홈이 집에서 멀지 않아 남편과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자주 들른다”면서 “이용료는 남편의 3형제가 분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곳에는 50∼80대 노인 13명을 간호사, 사회복지사, 조리사 등 8명이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체계적으로 돌보고 있다. 인근 기관들과 협조체계가 잘 돼 있어 노인들이 갑자기 탈이 나면 119구조대가 병원응급실에 데려다 주고 구청에서는 공공근로파견을 보내주고 있다. 필요할 경우 동네 병원의 정신과 전문의에게 진료받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노인들은 집에서 있을 때보다 건강하고 활력있게 지낸다고 한다.
은성 너싱홈(02-386-7897)은 1998년 서울 갈현동에 처음 문을 열었고 이듬해 6월 이곳이 두번째로 오픈했다. 다음달 중순에는 서대문구 봉원동에도 문을 열지만 입소 희망자가 밀려 있어 연말까지 2∼3곳을 더 세울 계획이다. 김정희(46) 원장은 국립의료원 간호사로 활동하다가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 너싱홈이 보편화한 것을 보고 국내에 도입했다. 한국노인의전화의 서혜경 이사는 “노인에게는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분위기가 가정적인 작은 규모의 요양시설이 바람직하다”면서 “너싱홈이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면 노인 돌보기로 고통받는 가정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국내 요양원은 크게 유료(3곳), 실비(14곳), 무료(63곳)로 나뉜다(한국노인복지시설협회 자료 참조). 무료와 실비 요양원은 입소 자격을 각각 생활보호대상자와 월평균소득 216만원 이하(4인 기준) 가구로 제한하고 있다. 유료 요양원은 충효의집(0331-249-9949), 작은효도원(0366-435-8996), 효자의집(0417-558-7772) 뿐이며 보증금 3,000만∼7,000만원에 월 80만∼100만원을 내야 한다. ‘노인방’으로도 불리는 주간보호(Day Care)센터는 오전 9시∼오후 5시 사이에 노인을 돌봐주고 있다. 이용료는 하루 3,000∼5,000원. 단기보호센터는 15일에서 3개월까지, 이용료는 하루 8,000∼1만5,000원. 사회단체에서 실시하는 가정봉사원 파견제도는 4시간에 1만3,000∼1만8,000원이며 초과시간당 2,000∼4,000원이 추가된다. 생활보호대상자나 독거노인에게 무료로 파견해주는 곳도 있다.
관련 정보 안내 노인복지시설협회(02)712-9763).
/이민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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