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서양의 ‘앵포르멜 미술’을 한자리에서 비교, 감상해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호암갤러리에서 17일부터 5월 14일까지 계속될 ‘한국과 서구의 전후 추상미술: 격정과 표현’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적 현상과 국제질서 변화가 어떻게 미술에 드러났는지 되돌아보는 전시회다.볼프강 슐체(뒤에 볼스로 개명), 장 뒤뷔페, 장 포트리에 등 유럽 앵포르멜 미술을 태동시켰던 3인의 작가를 비롯해 같은 시기 미국에서 ‘새로운 추상회화’를 일으켰던 ‘추상표현주의의 대부’ 잭슨 폴록, 6·25전쟁의 상흔을 딛고 한국에서의 앵포르멜 전위 부대로 나섰던 박서보, 윤명로, 김창열, 김봉태 등 국내외 작가 51명의 작품 70점이 전시된다.
부정형, 비정형의 뜻을 지닌 앵포르멜(Informel·불어)은 1940년대 중반 전쟁 경험이 만들어 낸 새로운 미술 운동이었다. 당시 미술가들은 과거의 모든 미술을 부정한 채, 이성보다는 직감, 주관적 감정에 매달려 격렬하면서도 서정적인 추상 화면을 구성해냈다.
새로운 미술운동의 선구자는 프랑스의 뒤뷔페. 이번 전시회에 나오는 작품 ‘풍경’에서 볼 수 있듯 그는 당시 미술재료로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모래, 풀, 석탄가루 등의 조악한 재료로 된 두꺼운 질감에 쇠꼬챙이나 나무 같은 것으로 긁고 스케치한 작품을 선보여 미술계에 충격을 주었다. 또 포트리에는 종이 위에 겹겹이 물감을 쌓아올리는 두터운 표면 효과를, 슐체는 마치 엽서에 끄적거린 낙서처럼 단색이지만 강렬하고 독백적인 작품으로 각각 앵포르멜 미술, 즉 유럽의 ‘서정추상’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장 폴 리오펠, 장 미셸 아틀랑, 니콜라스 드 스타엘 등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된다.
같은 시기 미국은 비록 전쟁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세계적인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미국의 미술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추상표현주의’화가로 떠오른 잭슨 폴록. ‘20세기 미국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는 그는 초벌칠이 안 된 거대한 캔버스를 마루에 놓고 그 위에 물감을 뿌리고, 흘리고, 흩어지게 하는 등 방식으로 조밀하면서도 끊임없이 복잡하게 엉킨 선과 색채를 표현해냈다. 이번 전시되는 작품 ‘No 18’은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앵포르멜 미술은 서구보다 10년 늦은 6·25전쟁 이후 출발했다. 6·25라는 사회적 혼돈, 기존 화단에 대한 불신, 새로운 미술에 대한 열정 등은 한국의 화가들도 새로운 집단적 전위 운동을 시작하게 했다. ‘현대미술가협회’(현대미협)의 김창열, 장성순, 하인두, 김서봉, 조용익, 이를 ‘현대전’이란 이름으로 바꾼 박서보, 이양로, 이수헌, 전상수, ‘1960년 미술가협회’(60년 미협)의 윤명로, 김봉태, 김종학, 최관도, 현대미협과 60년 미협이 합쳐 결성된 ‘악뚜엘’의 정상화, 김대우, 김봉태, 윤명로, 김종학, 손찬성, 이밖에 외국 유학파 권옥연, 남관, 이응노 등이 바로 국내 앵포르멜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 미대 김영나 교수는 “박서보, 정상화, 김창열의 작품에서 보이는 서체적 특징은 앵포르멜 미술이 서구미술의 일방적 모방이 아닌 동양문화의 뿌리를 재발견한 선택적 수용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