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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러 체제 앞둔 IMF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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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러 체제 앞둔 IMF의 미래

입력
200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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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입김에 개혁드라이브 펼듯유럽연합(EU)이 13일 호르스트 쾰러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총재를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후보로 지명한 데 이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를 ‘승인’함으로써 이변이 없는 한 ‘IMF호(號)’는 이제 쾰러 체제를 맞게 됐다.

쾰러는 앞으로 미국의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와 일본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대장성 재무관과 함께 경선을 나서게 된다. 그러나 IMF이사회가 쾰러의 후보자격을 정식으로 인정할 경우 나머지 두 후보는 경선을 포기할 것으로 보여 그의 총재 선출은 기정사실이나 다름 없다.

이번 새 IMF총재 후보 지명 과정은 무엇보다 미국의 막강한 힘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해주고 있다. 또한 IMF총재 자리를 위해서는 경제나 금융 등에 관한 전문 지식보다는 정치적 입지나 영향력이 더 우선시되고 있음을 거듭 확인시켜 주고 있다.

미국은 당초 EU가 추천했던 카이오 코흐-베저 독일 재무차관에 대해 거부의사를 분명히 함으로써 그를 보기 좋게 낙마시켰다.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 입지나 영향력이 부족하다”는게 이유였다. 하지만 미국이 EU와의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코흐-베저를 반대한 진짜 이유는 그가 IMF의 일대 개혁을 추진하려는 미국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8일 미 의회 특별위원회가 IMF와 세계은행의 기능 및 역할 축소를 골자로 한 개혁안을 내놓은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그렇다고 코흐-베저 대타로 나선 쾰러를 흔쾌히 맞아들인 것도 아니다. 미국은 쾰러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일체 반응을 유보하며 이리 저리 재다가 뒤늦게 EU와의 관계 악화 등을 고려, ‘OK’사인을 보낸 것이다.

따라서 쾰러 체제하의 IMF는 앞으로 한동안은 적극적인 개혁 드라이브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그 배후에는 미국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쾰러가 미국의 의도대로 고분 고분 잘 따라 줄 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2월 사퇴한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가 그동안 선진국 위주의 처방에 주력했고 미 의회의 개혁안도 개도국의 빈곤층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쾰러 체제의 IMF 행로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홍윤오기자 yohong@hk.co.kr

■ IMF 총재후보 호르스트 쾰러

유럽연합(EU)이 단일 후보로 추천, 차기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확실시되는 호르스트 쾰러(57)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총재는 전형적인 독일 관료 출신이다.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1969년 독일 남서부 튀바겐에 있는 응용경제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76년 독일 연방 경제부로 진입하여 정부에 몸 담았다. 특히 1982년 초대 헬무트 콜 정부의 재무장관에 임명된 스톨렌베르크 팀에 합류, 유럽 발전의 '엔진'격인 독일 경제의 실무를 떠맡아 왔다.

그는 특히 유럽 11개국 단일통화 '유로' 탄생의 계기가 된 마스트리히 조약 체결의 주역으로 유명하다. 1991년 당시 독일 국민 75%가 독일 마르크화 포기를 강력 반대했을 때 재무부 담당자인 그가 나서 유럽 단일통화 필요성을 역설, 여론의 물줄기를 돌렸다.

독일 재무관료들은 지금도 마스트리히 조약은 '쾰러의 작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나 구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독일로 이주, 본에서 성장했다.

재무부에 들어간 후에는 주로 국제 협상전문가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1993년 독일 은행연합회 회장을 거쳐 1998년 당시 콜 총리에 의해 EBRD 총재에 임명됐다. 유럽 몫이었던 유럽중앙은행(ECB)총재자리를 프랑스에 넘겨주고 받은 정치적 '빅딜'이었다.

그는 18개월동안 EBRD를 이끌어 오면서 뛰어난 경영수완을 보였다. 취임 당시 2억 5,000만달러의 적자에 허덕이던 은행을 1년여만에 2,600만달러의 흑자로 전환시켰다.

또 적절한 지원을 통해 구소련연방 해체에 따른 러시아의 경제위기도 깔끔히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앞서 독일 재무부 시절에는 통일후 독일 부흥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재무부 소속이던 1992년 "미국이 독일의 경제정책에 대해 일방적이고 편견에 찬 언급을 했다"며 미 재무부 차관보와 공개 논쟁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당찬 구석도 있다.

/파리=이창민특파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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