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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 (10) 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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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산실] (10) 아웃사이더

입력
2000.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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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시사·문화 평론지 ‘아웃사이더’가 창간됐다. 편집위원은 홍세화 김정란 김규항 진중권 네 사람이다. 편집위원들은 상지대 교수인 김정란씨를 빼고는 죄다 무직의 문필가들이지만, 개성적인 글쓰기를 통해서 1990년대 말에 많은 독자를 확보한 사람들이다.프랑스에 21년째 살고 있는 홍세화(53)씨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와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내 베스트셀러 저자 반열에 올랐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정란(47)씨는 신문기고·방송출연·문예지 편집·문화이벤트 기획 등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화전문지 ‘씨네21’의 고정난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에 시사·문화 평론을 기고하고 있는 문화평론가 김규항(38)씨는 요즈음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필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한다. 소장 철학자 진중권(37)씨는 그간 미학·미술사 분야의 깔끔한 책을 여러 권 펴냈지만, 그가 일반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은 것은 파시즘 비판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비롯한 일련의 풍자적 글쓰기를 통해서다.

나이도 다르고 관심 분야도 다를 이 네 사람을 ‘아웃사이더’의 편집진으로 묶어낸 공통적 특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잡지의 제호가 가리키듯 자신들이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라는 의식일 것이다. 그러면 이들을 ‘바깥(아웃사이드)’으로 밀어낸 우리 사회의 ‘안쪽(인사이드)’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들은 그것이 극우 집단주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이 보기에 한국 사회의 극우 집단주의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에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아웃사이더’는 시사·인물 평론지 ‘인물과 사상’이나 시사 월간지 ‘말’과 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잡지들이 형식에서고 내용에서고 동질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웃사이더’는 ‘인물과 사상’처럼 비판을 위주로 한 논쟁적 잡지가 되겠지만, 인물보다는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아우르는 문화와 사회의 구조에 더 시선을 집중할 눈치다. 게다가 자유주의자로 자임하는 ‘인물과 사상’의 주재자 강준만씨와는 달리, ‘아웃사이더’의 편집위원들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좌파라는 자기 규정을 공유하고 있다.

또 ‘아웃사이더’는 평론지라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편집위원들이 민족주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보도 위주의 잡지 ‘말’과 구별될 것 같다. 그것은 북한 체제에 대한 ‘아웃사이더’의 시선이 ‘말’의 경우보다 더 매몰찰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웃사이더’가 비판의 표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극우 집단주의이기는 하지만, 그 편집위원들은 좌든 우든 집단주의·전체주의에 대해서 깊은 혐오를 드러내왔다.

‘아웃사이더’의 지면은 모두 연재물로 채워진다. 그것은 ‘준비된 필자들’의 원고를 확보하려는 기술적 안전판으로 보인다. 창간호는 편집위원들과 외부 필자들의 연재물 열세 꼭지로 이뤄져 있다. 편집위원들 가운데 김규항씨는 자신의 글 대신에 대형 인터뷰를 연재하기로 했다. ‘아웃사이더를 찾아서’라는 제목을 단 이 시리즈의 첫번째 주인공은 인권운동가 서준식씨다. 서준식씨는 이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유연한 사회민주주의에서 공산주의까지를 아우르는 ‘사회주의’라는 애매모호한, 그래서 덜 위험한 말로밖에 자기 규정을 하지 못하는 것이 죄스럽다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세상이 어떤 것이든, 그의 초지일관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홍세화, 김정란, 진중권씨는 각각 ‘세느에서 한강까지’ ‘문학이 삶에게’ ‘진중권의 진중일기’라는 연재물을 시도했다. ‘진중권의 진중일기’의 제일탄은 ‘박정희교에 관하여’다. 진중권씨는 재작년에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로 시동을 건 박정희 비판을 이 글에서 총결산하고 있다. 그는 김유신, 이순신, 정조,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우익신통기(右翼神統記)에 대한 조롱을 시작으로 박정희 옹호론의 여러 뿌리를 잘 벼려진 논리와 풍자의 호미로 솎아낸다.

‘아웃사이더’는 이제 스타트라인을 막 떠났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그 나머지 반이 특히 아웃사이더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웃사이더’의 아웃사이더들은 쉽지 않은 일을 해낼 역량을 그간 넉넉히 보여 왔다

■창간사

하나의 잡지를 만드는 일에 의기투합했다지만 우리 네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극우 집단주의라는 데, 한국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극우 집단주의와 싸우는 일이라는 데 전적으로 뜻을 같이 했다. 우리는 이 중요한 싸움을 위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연대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이 작은 연대가 한국의 모든 양심적이고 분별력있는 지식인들의 거대한 연대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아웃사이더’의 목표는 번창이 아니라 쇠락이다. ‘아웃사이더’라는 잡지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날이 오기를 ‘아웃사이더’는 진정 바란다. 그 날까지 ‘아웃사이더’는 열심히 연대하고 기꺼이 싸울 것이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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