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도 다른 경기와 마찬가지로 대국 장면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 한 수 한 수 진행되고 형세가 뒤바뀔 때마다 희비가 교차되는 대국자들의 표정을 살펴보아야 재미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프로들의 대국은 대부분 엄격히 통제된 대국실에서 두어지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프로의 실전을 직접 옆에서 관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입회인과 기록 계시원 등 대국 진행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일반인으로서는 관전필자만이 오직 유일하게 대국 실황을 지켜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바둑팬들 가운데는 종종 관전필자를 부러워 하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 물정 모르는 이야기다.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프로들의 대국을 옆에서 지켜 본다는 것이 한편 재미있기도 하지만 한편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관전필자는 원칙적으로 오전 10시 바둑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부터 대국 진행 상황을 지켜 보아야 하지만 보통 짧으면 4∼5시간 길면 10시간 이상 걸리는 프로들의 대국을 하루 종일 지켜 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대국에 방해되지 않도록 꼼짝도 못하고 숨죽이며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하므로 재미있기는커녕 오히려 상당한 고역이다. 그래서 중간 중간 수시로 대국장을 들락거리며 잠시 휴식도 취하고 기사실에서 동료 기사들이 검토하는 것을 지켜 보기도 해야 하는데 대국자들이 한창 눈에 불을 켜고 대국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에서 덜컹 덜컹 문소리를 내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이같은 관전자의 고통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CC-TV이다. 지난 1994년 한국기원 건물이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현재의 성동구 홍익동으로 이전하면서 도전기 등 중요 대국이 열리는 특별대국실에 CC-TV가 설치된 것. 3대의 카메라를 통해 대국 진행 상황 뿐아니라 대국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히 살필 수 있으므로 검토실에 편안히 앉아서 관전과 검토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으니 여간 편한게 아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프로기사들이 CC-TV 설치에 이의를 제기한 것. 바둑판은 할 수 없지만 자신들의 대국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모니터에 비춰지는 것이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는 것. 실제로 대국에 몰두하다 보면 과히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 종종 연출되므로 남보기가 좀 꺼림칙했던 것. 그래서 지금도 특별대국실 CC-TV 카메라는 고정 시점으로 밋밋하게 바둑판 만을 비추고 있는데, 때문에 모처럼 조금 편해지나 했던 관전자는 또 다시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대국장 문을 조심조심 여닫으며 들락거리는 수고를 면치 못하게 됐다.
/박영철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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