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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탄생의 실무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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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탄생의 실무 주역

입력
2000.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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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단일 후보로 추천, 차기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확실시되는 호르스트 쾰러(57)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총재는 전형적인 독일 관료 출신이다.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1969년 독일 남서부 튀바겐에 있는 응용경제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76년 독일 연방 경제부로 진입하여 정부에 몸 담았다. 특히 1982년 초대 헬무트 콜 정부의 재무장관에 임명된 스톨렌베르크 팀에 합류, 유럽 발전의 '엔진'격인 독일 경제의 실무를 떠맡아 왔다.

그는 특히 유럽 11개국 단일통화 '유로' 탄생의 계기가 된 마스트리히 조약 체결의 주역으로 유명하다. 1991년 당시 독일 국민 75%가 독일 마르크화 포기를 강력 반대했을 때 재무부 담당자인 그가 나서 유럽 단일통화 필요성을 역설, 여론의 물줄기를 돌렸다.

독일 재무관료들은 지금도 마스트리히 조약은 '쾰러의 작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나 구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독일로 이주, 본에서 성장했다.

재무부에 들어간 후에는 주로 국제 협상전문가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1993년 독일 은행연합회 회장을 거쳐 1998년 당시 콜 총리에 의해 EBRD 총재에 임명됐다. 유럽 몫이었던 유럽중앙은행(ECB)총재자리를 프랑스에 넘겨주고 받은 정치적 '빅딜'이었다.

그는 18개월동안 EBRD를 이끌어 오면서 뛰어난 경영수완을 보였다. 취임 당시 2억 5,000만달러의 적자에 허덕이던 은행을 1년여만에 2,600만달러의 흑자로 전환시켰다.

또 적절한 지원을 통해 구소련연방 해체에 따른 러시아의 경제위기도 깔끔히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앞서 독일 재무부 시절에는 통일후 독일 부흥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재무부 소속이던 1992년 "미국이 독일의 경제정책에 대해 일방적이고 편견에 찬 언급을 했다"며 미 재무부 차관보와 공개 논쟁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당찬 구석도 있다.

/파리=이창민특파원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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